싱가포르에서 축구를 하기 위한 무한도전
한국에서는 쉽게 하던 것을 즐기지 못하는 것은 외국 생활의 고통을 몇 배 더 느끼게 한다. 대부분 사람들은 외국 생활 중 무엇이 가장 힘드냐고 물으면 음식을 꼽는다. 한국에선 쉽게 자주 접하던 음식을 먹을 수 없으니 얼마나 그립겠는가? 하지만 나에게 이 질문을 던진다면 마음대로 운동하지 못하는 것과 한국식 사우나를 즐기지 못하는 것을 꼽는다. 그러나 다행히 대부분 싱가포르 콘도(아파트)에는 작은 전기식 사우나가 있고, 수영장이 있어서 대충 부족한 사우나는 해결 된다. 그리고 따듯한 목욕 또한 집 욕조에 물을 받아서 대충 해결을 하면 그런대로 일정 부분 목마름은 해결 된다. 그래도 한국식 찜질방이나 사우나 만은 하지 못하다.
이러다 보니 나에게 싱가포르 생활에서 가장 큰 문제로 남는 것은 내가 좋아하는 운동을 쉽게 즐기지 못하는 것이 되었다. 나의 운동 취향은 축구나 야구 등 사람들과 팀을 이루어 즐기는 구기 운동을 좋아한다. 그러나 먼 이국땅에서 같이 할 수 있는 친구나 팀을 찾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나이가 50 살 가까이 되어가는 나같은 장년(?)들은 더욱 그러하다.
이곳에 온 초기에 한국인들끼리 하는 축구팀이 있어 한 곳에 가입을 위해 방문을 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유니폼 전면에 새겨진 "하나님이 항상 너와 함께 하신다"는 커다란 문구와 십자가 그리고 너무 젊은 나이의 동료들은 나를 주눅들게 했으며 오히려 같이 운동하는 것이 서로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결론에 도달하여 가입을 포기했다.
싱가포르 리틀인디아역에 있는 패러파크운동장 축구장
그러던 어느 날 난 결심했다. 축구보다는 야구를 하겠노라고. 야구보다 축구를 조금 더 좋아하는 나로서는 가슴 아픈 일이지만 최선이 아니면 차선을 찾는 것이 도리라 생각하였고, 그리하여 한국인으로 구성된 유일한 싱가포르 야구팀에 가입하기 위해 그들이 운동하는 야구장에 방문하여 가입을 위한 사전 탐색을 했다. 그런데 야구하는 운동장 바로 옆 운동장에 열심히 축구 시합하고 있는 싱가포르인들 모습을 보자 야구단에 가입하겠다는 내 생각은 어디로 가고, 저들과 함께 공을 차고 싶다는 생각이 나의 머릿속을 지배하고 말았다.
결국, 난 야구단 가입은 뒤로 미루고 숙고의 나날을 가진 후 또다시 결심했다. 야구장 옆에서 축구하던 그들 팀에 가입하여 공을 차겠노라고. 그러나 이는 단순한 나만의 생각일 뿐 어떻게 가입해야 할지, 싱가포르 축구팀은 어떻게 운영되는지 어떠한 지식도 없었고, 더욱이 가입을 위해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이제 겨우 밥 먹고, 버스 타는 정도의 영어 실력으로 그들과 대화하여 가입한다는 것은 무모한(?)도전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어쩌랴? 너무도 축구를 하고 싶은데, 결국 그 다음 주 난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
한 주가 지난 일요일 아침, 전쟁터에 나가는 병사처럼 싱가포르인들이 운동하고 있는 운동장으로 버스를 타고 갔다. 40여 분 걸리는 버스 안에서 나는 알고 있는 모든 영어 단어를 떠올렸고, 수많은 말들을 영작하여 중얼거리며 드디어 운동장에 도착했다. 막상 운동장에 도착하여 그들을 보니 도저히 용기가 나지 않았다. 무슨 말부터 해야 할지, 안 된다고 하면 어떡하지? 등 수 만 가지 잡생각들이 머리 괴롭히고 있었다. 그들과 100M 이상 떨어진 나무 아래 앉아 가슴만 콩닥콩닥 거리며 있는데, 어느새 경기는 시작되고 있었다.
아뿔싸! 이러다가 그냥 가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과 나에 대한 자책, 좌절을 느끼는 그 순간. 늦게 도착 한 한 선수가 경기장에 들어갈 준비하고 있는 게 내눈에 보였다.
작은 골대를 놓고 시합 준비를 하는 축구팀원들
이때가 아니면 안 된다 나는 생각했고, 드디어 난 용기를 내었다.
그리고 수 없이 연습했던 그 말.
"Can I play soccer with you?"
모든 감각을 나에게 올 대답을 기다리며 슈렉에 나온 고양이 마냥 작은 눈을 크게 뜨고, 그를 쳐다보았다.
"No, Ploblem ! "
내가 아는 단어가 들린다. 문제가 없단다.
그리고 연이어 들리는 말!
"Do you have shoes?"
짧은 순간, 길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고, 나는 대답했다.
"Ok!!"
이렇게하여 4월 어느 날부터 나는 싱가포르 로컬(현지인) 축구팀에 들어 축구를 하는 유일한 외국인이 되었다.
요즘, 나는 비록 유니폼을 잘 갖춰 입은 정형화 된 축구팀은 아니지만 매주 20여 명 이상의 여러 인종(그러나 모두 싱가포르인)들이 모여 나는 축구를 한다. 그리고 잔디보다는 풀이 훨씬 더 많은 풀축구장에서 나는 축구를 한다. 적도의 나라 싱가포르에서 태양이 내 정수리에 올라 온 11시부터 매주 2시간 이상 죽기 살기로 축구를 한다. 이제는 보는 사람마다 나에게 말레이시아 출신이냐고 물을 만큼 얼굴이 검게 탄 상태로 오늘도 난 축구를 한다.
나는 즐겁다. 내가 좋아하는 축구를 해서 즐겁고, 나를 이방인 취급하지 않는 싱가포르인들이 너무도 좋고, 감사하다. 아직도 그들이 말하는 말의 10분의 1도 알아듣지 못하지만 나는 매주 재미있게 그들과 축구를 하고, 이제, 팀의 제일 연장자인 앤드류(62세)와 친한 친구가 되어, 그의 친구들을 소개 받으며 호커센터에서 맥주를 마시기도 한다.
용기 있는 자만이 미인을 얻는다는 말처럼 나에겐 용기 있는 자만이 축구를 즐길 수 있다고 들리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