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장갑과 빨간책방
매일 찬밥만 먹다가 갓 지은 뜨거운 밥을 먹는 것이 이런 맛일까?
오늘 처음으로, 나는 팝캐스트에 막 올라온 빨간 책방 에피소드 148회를 정선으로 가는 차 안에서 들을 수 있었다. 그동안 나는 빨간 책방의 에피소드를 바로 듣지 못했다. 이유는 내가 빨간책방을 알게 된 것이 그리 오래되지 않아서 처음부터 하나씩 들어보고 싶었던 개인적인 욕망 때문이었다.
.
작년 말 가족들과의 외국 생활을 마치고, 귀국을 위해 이것저것을 준비하면서, 이제 더는 팝캐스트로 영어 공부는 안 해도 된다는 생각에 안도하게 되었고, 이를 대체할 만한 팝캐스트를 찾았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알게 되었던 것이 바로 빨간 책방이었다. 닉네임 빨간장갑으로 불리던 나에게 어느 이름보다도 솔깃한 이름의 팝캐스트였다.
오래전부터 실무에 도움되지 않는 책을 읽을 바에는 차라리 인터넷에서 IT 관련 매뉴얼을 보며 프로그램 지식을 하나 더 익히는 것이 유용하다고 생각하던 나는, 막연한 의무감에 책을 읽으려는 시도라도 할 때이면 어떤 책이 좋은 책인지, 어떤 책이 나의 흥미를 끌 수 있을지, 어떤 책을 읽어야 내 소중한 시간이 낭비되었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것인지 늘 고민하여야만 했다. 그러다 보면 결국에는 남들 입에 많이 회자되는 책을 고르게 되거나 베스트셀러에 오른 책을 고를 수밖에 없게 되곤 했다. 그리고 그 책을 읽으면서는 그런 책을 보는 것에 대한 어쭙잖은 반감이 마음 한쪽에 또아리 뜬 채로 남아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러던 내가 우연한 기회에 듣기 시작한 빨간 책방은 두 가지 이유로 나의 관심을 단박에 사로잡았다. 그 이유는 책을 선별하는 이동진의 탁월한 능력도 아니었고, 김중혁의 날카로운 표지 분석도 아니었다. 어처구니없게도 나를 사로잡은 것은 이동진과 김중혁의 내 수준에 딱 맞는 그들의 말장난이었다. 그들의 말장난은 응답하라 1988의 김성균을 미리 보는 듯했고, 당시 유행하던 유머 1번지를 보는 것 같았다.
그리고 또 하나는 이동진과 김중혁과 강원도였다. 외국 생활을 마치고, 귀국 후 강원도 원주에 거주하면서, 강원도 정선에서의 귀촌을 준비하고 있는 나에게 이 우습지 않은 공통점은 결국 나를 빨간 책방의 열혈 청취자가 되게 하고 말았다.
그리하여 나는 빨간 책방의 에피소드를 정선으로 가는 차 안에서, 밭의 풀을 제거하는 제초기를 돌리면서, 새롭게 개간한 땅의 돌을 고르면서, 그리고 원주 집으로 가는 차 안에서 줄곧 들었다. 그렇게 하여 드디어 언제쯤이나 되어야 다 들을 수 있을까 걱정하던 빨강 책방 에피소드를 어제 다 들었고, 오늘 드디어 따끈따끈한 새 에피소드 148회 이기적 유전자2를 듣게 된 것이다.
이제 나는 예전처럼 책을 선택하는데 많은 고민을 하지 않는다. 나에게 책, 임자를 만나다의 책은 필수이고, 이동진의 내가 산 책은 옵션처럼 나의 책 읽기의 이정표가 되었다. 비록 방송에서 소개해 준 책을 모두 읽지는 못했지만, 가끔 서점을 가거나 동네 헌책방을 가게 되면 낯익은 작가와 책 제목들이 눈에 들어오기도 한다. 때로는 예전에 몰랐던 특정 작가의 이름을 말하고 책을 찾기도 하고, 급기야 김중혁 작가를 모른다는 인천의 어느 헌책방 주인에게는 김중혁 작가를 설명하기에 이르렀다.
나의 책 읽는 길에 팝캐스트 빨간 책방이 정도는 아님은 안다. 하지만 내게 책 읽는 재미를 들여주고, 책을 고를 수 있게 해주고, 더 많은 착가를 알게 해준 빨간 책방이 한없이 고마운 것은 어쩔 수 없다.
PS : 이 리뷰가 빨간책방 150회에 소개 되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