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라리사람들]닭 모가지를 누가 비틀 것인가?(201808)
정선군청 기관지 "아라리 사람들"에 명예 기자를 맡으면서 "아리리 사람들"에 기고한 글들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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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살다 보면 원하지 않는 일을 해야할 때가 있다. 개인을 위해서든 집단을 위해서든 어쩔 수 없이 손에 피를 묻혀야하는 때도 있다. 그 주인공이 내가 될 수도 있고, 너가 될 수도 있다. 아니면 우리와 관계 없는 제 3자가 될 수도 있다.
처음에 우리 집에 온 닭은 수탉 한 마리와 암탉 세 마리였다. 그런데 그 중 가장 예뻤던 하얀 암탉 한 마리는 돌연사 했다. 모든 돌연사가 그렇듯이 사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어쨌든 시간이 흘러 살아남은 닭 중 암탉 한 마리가 9마리의 병아리를 부화하였다. 이제 닭이 12마리가 된 것이다. 이때만 해도 난 별 고민이 없었다. 그런데 나머지 한 마리 암탉도 알을 낳아 부화를 시키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비로소 나의 고민은 시작되었다.
닭장에 닭이 미어터지는 순간이 오기 전에 인위적으로 닭의 수를 조절 하는 것이 창조주의 숙명처럼 나의 숙명된 것을 깨달은 것이다. 이 숙명은 닭을 누구에게 주거나 잡아먹어야 하는 순간이 왔다는 것이다. 그런데 남에게 준다는 것은 초기 병아리 값 및 그동안 들어간 사료 값과 닭에게 쏟은 시간을 생각하자 소시민인 나로서는 본전 생각이 나서 감히 실행 할 수 없었다 보통 병아리는 부화한 지 45일 정도 지나면 삼계탕용이나 백숙용으로 쓰일 수 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영(연)계(軟鷄)이다. 새로 부화한 9마리 병아리들은 모두 50일이 넘었다. 결국 우리 닭장의 12마리 닭은 관상용에서 식용으로 바뀌는 자격을 시간에 의해 자동으로 부여 받았다.
이 부분에서 “기르던 닭을 잡아 먹을 수 있냐?”는 원론적인 문제는 나에게 고민 꺼리가 되지 못한다. 더 큰 문제는 “누가 닭을 잡을(죽여 줄) 것인가?”가 더 크고 중요한 문제다. 만일, 누군가가 닭을 잡아준다면 내가 기르던 닭이라도 나는 기꺼이 아주 맛있게 다양한 요리로 먹을 자신이 있다. 아마 우리 식구들도 그렇고, 내 주위의 동료들은 더 좋아할 것이다. 그런데 정작 문제는 닭을 잡을 수 있는 사람이 내 주위에 없다. 10년 전쯤 나보다 먼저 귀농 후 당연한 일인 것처럼 닭을 키우던 처가 어른들은 닭을 잡아야 하는 일이 생기면 옆집 아저씨에게 닭을 죽여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수고비로 담배 한 보루를 사다드렸다. 만일 지금도 같은 방법을 쓴다면 담배 한 보루에 4만원이라고 가정했을 때, 마트에서 닭 5마리 정도는 살 수 있는 금액으로 내가 기르던 닭을 잡는 것이다. 이 방법은 내가 기른 닭을 먹으면서 남이 기른 닭을 사 먹는 값보다 훨씬 비싼 값을 치루는 셈이다. 이건 배보다 배꼽이 훨씬 큰 일이다. 이런 고민으로 인해 요즘 닭장의 닭을 자주 들여다본다. 그러다보면 자연스럽게 닭과 눈을 마주친다. 닭의 눈을 정면으로 보는 것은 별 느낌이 없다. 그런데 닭의 뒤쪽에서 닭을 바라보는데 닭이 나를 경계하고 있을 때면 나는 가끔 닭이 무서워진다. 분명 닭의 대가리는 정면을 향하고 있는데, 닭의 튀어 나온 갈색 눈동자는 나를 보며 굴러 다니고 있는 것이다. 마치 생선 좌판에 죽어 있는 가지미가 나를 쳐다보며 눈을 굴리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러니 나는 더 닭을 잡을 수도 죽일 수도 없다. 이런 것을 감내할 수 있을 정도로 내 심장이 튼튼하지는 못하다.
시골 생활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닭을 잡아야 한다는 생각에 인터넷에서 '닭 잡는 법'을 검색해 보았다. 친절하게 연관 검색어로 '닭 잡는 기계'가 나온다. 하지만 아직 닭 잡는 기계는 찾을 수 없었다. 요즘 농촌에는 귀농, 귀촌 인구가 많아졌다. 보통 시골 마을의 1/3 이상이 그들이다. 그리고 그들의 상당수는 당연하게 닭을 기르고 있고 나와 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고 추측되었다. 닭을 잡는 법은 지방에 따라 취향에 따라 여러 가지가 있다. 가장 고전적이고 대중적인 방법은 아마도 닭의 목을 비트는 것이다. 어쨌든 나는 곧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야 한다. 누군가는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이 온다고 했다. 하지만 과연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이 정말로 오는지 알 수 있도록 누군가 우리집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 주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곧 새로운 창조적인 업종이 생길 것을 상상해 본다. "닭 모가지 비틀어 드립니다. 한 마리에 5천원!! 두 마리 하시면 한 마리 서비스 입니다. 3마리에 단돈 만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