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무(haze)와 싸운 일주일
2013.06.25
지난 일주일 싱가포르에 온 처음으로 haze와의 전쟁을 겪었다. 일 년에 한번 있는 일이라니 올해 거주를 시작한 나로서는 당연한 일이기도 하지만 2년 차인 우리 식구들도 이런 Haze는 처음이라니 아마 기억에 남을 일이기는 할 것이다. 이 전쟁은 나만 겪은 것이 아니라, 싱가포르에 있는 모든 사람과 말레이시아, 그리고 인도네시아 사람들까지도 함께 겪은 전쟁이었다. 전쟁이라 표현한 이 Haze 현상은 전 세계에 뉴스로 보도되었고, 한국에서도 몇 차례 뉴스로 방영되었다고 한다.
첫째 날, 지난주 화요일(6월 18일)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가끔 들리던 도서관에 시간을 내어 갔었다. 잠시 밖에 나와 보니 하얀 연무가 공기를 덮은 듯했다. 점심때 기온은 항상 30도가 넘는 싱가포르에 안개가 낄 리는 없고, 그렇다고 공장 등 생산시설도 없어 스모그나 공장 매연이 하늘을 덮을 리도 만무했다. 온종일 그 궁금증을 뒤로 한 채 공부를 하고, 집으로 돌아와 딸에게 물어보니 haze라는 연무란다. 오늘 학교에서 가르쳐 주었는데, 매년 이즈음에 이러한 현상이 일어난다고 한다. 이유는 옆 나라 인도네시아에서 개간과 재로 만들어지는 비료생산을 위해 산을 태우면서 그 연기가 싱가포르까지 날아온다는 것이다. 마치 우리나라가 중국의 황사의 영향을 받는 것과 마찬가지 현상이었던 것이다.
둘째 날, 다음 날이면 괜찮아지겠지 하고 하루를 보내고 나니, 하늘이 더 뿌옇다. 이제 공기에서 연기냄새, 즉 탄 냄새가 난다. 마치 한국의 시골 들녘에서 잡쓰레기를 태울 때 나는 퀘퀘한 연기 냄새와 같다. 하지만 그 연기에는 어떠한 추억도 그리움도 없는 퀘퀘한 냄새일 뿐이었다. 밖에 나가니 많은 사람이 마스크를 쓰고 다니고, 그냥 다니기에는 약간 거북함을 느끼게 되었다. 숨이 막힌다기보다는 냄새와 느낌이 좋지 않다. 인터넷을 통해 이런저런 정보를 검색해 보니 1997년에 아주 심각한 haze 사태가 있었고, 싱가포르 및 많은 주변국이 혼란을 겪었으며, 항공기 운항에도 차질이 생기기도 했다고 한다. 호기심이 발동하여 추가로 인터넷을 검색하니 여러 가지 정보를 찾아볼 수 있었다.
Haze는 단순히 인도네시아 화전민들이 밭을 개간하기 위해서 논을 태우는 것만은 아니었다. 6월 건기에 자연 발화가 되는 경우도 흔하다고 한다. 더욱이 이렇게 자연 발화가 되는 경우 나무와 함께 대지에 있는 3-4M의 토탄층이 함께 타면서 몇 날 며칠 계속해서 타게 되며, 심지어 몇 달 동안 꺼지지 않는다고 한다. 불이 나는 곳은 무려 1,000여 곳이 넘는다고 한다. 건기가 지나고, 비가 내리기 시작하면서 자연적으로 꺼지거나 인공적으로 진화하여야 한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이 문제로 인도네시아와 이웃 나라 간의 분쟁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1997년 Haze 발생 시 최고 226 PSI(Haze를 측정하는 공기 오염 단위)를 기록하여, 싱가포르 및 주변국들이 막대한 피해를 보았다고 한다.
셋째 날, 그런데 올해 Haze가 발생한 3일째 되는 목요일 Haze 수치는 1997년 기록을 넘어서고, 심지어 371을 기록했다. 다행히 싱가포르의 초, 중, 고 및 대학교는 방학 중이라 별다른 조치가 없었고, 싱가포르 모든 방송과 신문은 하루종일 haze 소식과 인도네시아와 협상 진행 상황을 속보로 전하기 시작했다.
(사진 출처:야후)
넷째 날 금요일, 전날 자율 귀가를 시행했던 싱가포르 한국학교는 급기야 휴교조치가 이루어졌다. 그리고 Haze 수치는 400을 넘어섰다. 실로 엄청난 수치이다. 약국과 대형마트에는 마스크는 동났고, 싱가포르 당국에서는 인도네시아를 여러 방면에서 압박 하면서, 마스크 특별 생산 공급하는 것과 호흡기 질환으로 인한 병원 진료 시 나라에서 비용을 지원하는 조치를 취하였다. 마스크를 구하지 못한 우리는 한국에 마스크를 해외배송 시켰다. 그리고 일부 한국인들은 한국이나 외국으로 피난(?)을 갔다.
보통 1-50까지의 Haze 수치가 일상적이며, 100을 넘어가면 건강에 해롭고, 200을 넘어가면 야외 활동을 자제해야 하는 수치라고 한다. 그리고 300이 넘어가면 건강에 치명적이라 어린이와 노약자 그리고 호흡기 환자는 절대 외출 금지라고 한다. 그런데 그 수치가 400이 넘어간 것이다.
밤에도 26도가 넘고, 낮 기온 32도를 넘는 더운 이 나라에서 창문을 열지 못하고, 에어컨을 켜놓고 살자니 전기료도 걱정이고, 몸도 안 좋아지는 듯했다. 더욱이 개인적으로(지극히 개인적으로) 싱가포르에 와 현지인들로 구성된 축구팀에 지난주에 어렵게 가입하고 첫 경기를 이번 주 일요일에 하기로 했는데, 이 상태라면 축구도 못하게 될까 봐 내 속은 까맣게 타 들어갔다. 오히려 건강 삼아 운동하다가 호흡곤란으로 건강에 치명상을 입게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나에겐 Haze의 무서움 보다 축구를 못한다는 것이 더 걱정이었다.
(Haze 현황도-말레이시아로 옮겨 간 모습 - 노랑색이 연기)
Haze 발생 5일째, 토요일 아침 하늘에 해가 보였다. 그동안 연무에 가려 해가 보이지 않았는데, 해가 보인다는 것은 연무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Haze 현황을 실시간으로 알려주는 싱가포르 홈페이지를 가 보니 인도네시아의 산불이 꺼진 것이 아니라 바람 방향이 싱가포르 위쪽으로 바뀌어서 연무가 말레이시아 중앙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결국, 인간의 힘이 아닌 자연의 힘으로 연무가 걷히고 있는 것이었다. 싱가포르에 있는 우리는 편하게 숨을 쉴 수 있게 되었지만 말레이시아에 있는 사람들은 우리가 겪었던 고통을 그들이 받게 된 것이다. 그리고 또 개인적으로, 다행히 내일 축구를 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 보이고, Haze 수치 130 이하이면 축구를 한다는 영어로 된 문자가 축구모임 총무(?) Peter로부터 날아왔다.
6일째, 일요일 아침 7시 기준 Haze 수치 110을 기록 정상적으로 축구 시합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약간의 연무가 있기는 했지만, 호흡이 곤란하거나 하지 않았고, 오히려 연무가 뜨거운 태양을 가려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들기까지 했다.
오늘 (6월 24일) 일주일 째, 이제 연무 지수는 100이하로 내려갔고, 70 PSi 정도에 다다랐다.(위 그림 참조) 이제 정상적인 생활이 가능하다. 오늘도 뜨거운 적도의 태양이 내리쬐고 있다. 하지만 아직 끝이 아니다. 현재 연무는 말레이시아 쪽으로 흐리고 있으며, 자연적인 비가 내려야 이 모든 것이 끝난다고 한다. 다행히 내일 싱가포르에는 비가 예보되어 있다. 거의 보름 이상 비가 내리지 않았다. 지금 한국은 장마 기간이라 모두 해 뜰 날을 기대 하지만, 이곳 싱가포르에서는 비 오기 만을 모두 기다린다. 그리고 아무리 인간이 날고뛰어도 커다란 자연재해는 인간 스스로 극복 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고, 자연만이 근본적으로 치유할 수 있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