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선에 살어리랏다

어린생명체[아라리사람들 2023.02]

즐거움이 힘 2023. 2. 10.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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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무척 많이 내린 날이었다.그래서 건물 밖은 온통 하얀색이었다.그리고 그날은 올겨울 중 가장 추운 날이었다.

그날 나는 원주 사무실로 출근했기에 온통 눈에 덮인 치악산을 볼 수 있었다. 원주 사무실은 공유 사무실이다. 그래서 따뜻한 바람이 나오는 히터는 각각의 사무실에 설치되어 있지 않고, 사무실 사이가 훤히 뚫린 천장에 설치되어 있다. 공유 사무실이라 히터와 에어컨도 공유인 셈이다. 매섭게 추운 날은 사무실 문을 열어 놓아야만 따뜻하게 일을 할 수 있다.

그날도 그랬다. 사무실 문을 반쯤 열어 놓고 일을 하고 있었다. 잠깐 머리를 돌렸을 때, 열린 사무실 문틈으로 나뭇잎처럼 보이는 갈색 물체가 덩그러니 복도에 떨어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아마도 내가 기르고 있는 그렇지만, 사무실이 비좁아 복도에 내놓은 고무나무에서 떨어진 나뭇잎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다시, 일을 하다가 한 시간 정도가 지난 후 머리를 돌렸을 때도 나뭇잎이라고 여겼던 물체는 그 자리에 변함없이 있었다. 내 나무의 나뭇잎이라고 생각한 나는 주워 버리려 가까이 다가갔다. 그러나 그것은 나뭇잎이 아니었다. 아주 작은 생명체였다.

 

마치 작은 생쥐처럼 보이는……

생쥐처럼 보이던 그것은 처음에는 쥐였다. 그런데 쥐라고 부르기엔 너무 작고 어렸다. 너무나 작은 생명체이고 움직이지 않았기에 더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생쥐가 아니라 두더지처럼 보였다. 그것이 나뭇잎이든 생쥐든 두더지든 내가 치워야 했기에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가져와 그 생명체를 담으려 했다. 꿈쩍 않던 생명체는 그제야 꿈틀대며 도망치려 했다. 하지만 멀리 가지 못했고, 두어 번에 걸친 비질 만에 내 손의 플라스틱 쓰레받기에 담겼다. 생쥐인지 두더지인지 하는 그 생명체는 쓰레받기를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 쳤다. 하지만 플라스틱 바닥이 미끄러워 전혀 전진하지 못했다. 그리고 나의 빗자루에 눌려 더더욱 움직일 수 없었다.

 

어린 생명체를 제압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다음이 문제였다. 이걸 어떻게 처리해야 할까? 하얗게 눈 덮인 건물 밖 풀숲에 던져 버릴까? 비닐, 봉지에 담아 쓰레기통에 버릴까? 아마도 이 작은 생명체는 한겨울 눈 속을 피해 따뜻한 건물로 피신했을 것이다. 그런데 인간의 공간인 콘크리트 건물은 이 생명체에게는 더욱 위험한 곳이었다. 인간 누구도 그것이 생쥐든 두더지든 반겨주지 않기 때문이다. 복도에서 우연히 마주쳐 내가 들고 있는 쓰레받기에 놓이게 된 작은 생명체 때문에 머리가 순간 복잡해졌다. 이것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아마도 밖이 매섭게 춥지 않았다면, 아마도 밖의 풀숲이 눈에 덮이지 않았다면, 아마도 내가 좀 더 젊었다면 나는 고민하지 않고 그 어린 생명체를 밖으로 던져 버렸을 것이다. 그러나 그때 그러지 못했다.

 

젊은 시절 낚시를 즐기며 물고기를 잡아 횟감으로 즐기던 내가 요즘 낚시 방송을 보지 않는다. 인간의 즐거움을 위해 살아있는 생명체를 놀잇거리로 만드는 장면을 보는 것이 힘들다. 나는 동물 애호가가 아니다. 반려견을 기르지도 않는다. 반려묘와 함께 살지도 않는다. 그런데 시나브로 내가 바뀌었다. 나이가 들어서인가? 아니면 저 생명체가 너무 어려서인가?

 

결국, 작은 생명체는 스티로폼 박스에 담겨 그것을 본 모든 사람이 쥐가 아니라 두더지라 믿으며 관리사무실에 맡겨졌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에 죽었다.

 

하지만 나는 내 손으로 그 생명체를 죽이지 않았다는 것에 감사했다.

 

<본 글은 아래 경험을 다시 각색하여 쓴 글입니다.>

2022.12.26 - [일상다반사] - 한 겨울의 두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