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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

한 겨울의 두더지

by 즐거움이 힘 2022. 12.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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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많이 내린 날이었다. 사무실 밖은 온통 하얀색이다. 저 멀리 보이는 치악산은 눈이 많이 내려서인지 더욱  아름다웠다. 내가 근무하고 있는 사무실은 여러 사람들이 함께 쓰는 공유 사무실이기에 온풍기는 각 사무실에 설치되어 있지 않고, 복도나 사무실 칸막이 위 천장에 설치되어 있다. 오늘 같이 추운 날은 사무실 문을 열어 놓아야만 따뜻한 온기를 더 느낄 수 있기에 사무실 문을 반쯤 열어 놓고 일을 하고 있었다. 잠깐 머리를 돌렸을 때, 열린 사무실 문틈으로 보이는 복도에 나뭇잎으로 보이는 검은 아니 갈색 물체가 덩그러니 떨어져 있었다. 아마도 내가 기르고 있는 그렇지만, 사무실이 비좁아 복도에 내놓은 고무나무에서 떨어진 나뭇잎이라 생각했다. 한 시간 여가 지난 후 잠시 쉬려고 했을 때도 그 나뭇잎은 그대로 그 자리에 있었다. 그 누구도 치우지 않았다.  그 나뭇잎이 내 고무나무에서 떨어진 것이 맞다면 그 책임은 나에게 있다. 내가 기르는 나무, 그리고 복도에 놓인 내 나무에서 떨어진 잎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뭇잎을 주우러 가까이 가보니 나뭇잎이 아니었다. 아주 작은 생명체였다. 마치 작은 생쥐 같은....

 

 

가까이 가서 보니 쥐가 맞다.  너무 작고 어리다. 자세히 살펴보니 생쥐가 아니라 두더지처럼 입부분이 길게 나와 있는 생명체이다. 어쨌든 치워야 하기에  사무실에서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가져와 버리려 담아 보니 꿈틀대며 도망치려 한다. 몇 번에 걸친 빗질 끝에 겨우 플라스틱 쓰레받기에 그 생명체를 담았다. 그 생명체는 쓰레받기를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 쳤다. 하지만 플라스틱 바닥이 미끄러워 계속 미끄러워진다. 마치 월미도의 디스코 팡팡에서 자기 자리로 돌아가기 위해 발버둥 치는 젊은이 같다.  비록 한 발자국도 걷지는 못하지만 혹시나 도망갈까 빗자루로 그 생명체를 누르고 제지했다. 

 

생명체를 제지하고 제압하는 데 성공했지만 다음이 문제다. 이걸 어떻게 처리해야 할까? 이걸 어쩐다. 이 추운 겨울 날씨에 그리고 눈 덮인 마당에 집어던지기엔 너무 잔인하다고 생각되었다. 쓰레받기에 두더지로 여겨지는 쥐를 든 채 어찌할지 몰라 이리저리 방황했다. 아마도 이 생명체는 춥고, 눈 덮인 마당을 피해 따뜻한 이곳으로 피신을 한 모양이다. 하지만 이곳은 이 생명체에게는 더욱 위험한 곳이다. 그 누구도 이 생명체를 반겨주지 않기 때문이다. 어쨌든 포획한 이것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는데, 저 멀리 건물을 청소하시는 아주머니가 눈에 들어온다. 어찌 보면 이 아주머니에게 일정 부분 책임이 있는 생명체이다. 또한 이 건물에서는 이 생명체를 처분할 권리와 의무를 가지고 있는 분이다. 

혹시 놀랄까 아주머니에게서 적당히  멀리 떨어져 보여주며 어찌할까 물어보니 기겁을 하며, 비닐봉지에 넣어 버리라고 한다. 그런 방법도 있구나 생각했지만 그 방법은 이 생명체를 추운 밖에 던져 놓는 것보다 더욱 자인한 일이다. 단지 밖에 던지는 것은 한 번의 행위로 끝나지만 비닐에 넣어서 버린다는 것은 두 번의 행위를 하고,  이 생명체의 상태를 눈으로 지켜봐야 하는 일이기에 도저히 할 수가 없었다. 아주머니는 저만치 떨어진 것에서 여전히 우두 꺼니 서 있다.

아주머니의 주장을 단호히 거절하기가 미안해

"혹시, 누가 기르는 것은 아니겠지요?"라고 물으며 사무실에 물어봐야겠다고 말하면 운영무실로 향했다. 이 건물에서 이 생명체를 처분할 수 있는 가장 상위 기관이기 때문이다.

 

안면이 있는 운영국의 남자 직원을 불러 이것을 어찌해야 할지 물어보려 했지만, 남자 직원은 자리에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다른 여자 직원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쥐를 보여주며 물었더니 기겁을 한다. 하지만 그녀 보다 조금 젊어 보이는 또  다른 한 여자 직원은 거침없이 나에게 달려와 그 생명체를 보고 놀랍다는 표정을 잠시 짓더니 이후 귀엽다며 안절부절못했다. 그녀도 나처럼 이 생명체를 죽이기에는  마음이 모질지 못해 보였다. 심지어 만져도 되느냐 나에게 물었다.  만지는 것은 본인의 자유이지만 나는 어떠한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위험하고 더러운 그리고 전염병을 옮길 수도 있는 알 수 없는 생명체이기 때문이다.

나를 비롯하여 청소 아주머니, 사무실의 직원 둘, 총 4명이 빗자루에 눌려 쓰레받기에 잡혀있는  생명체를 중간에 두고 의견을 모은다. 이를 어쩔 것인지 그 순간에도 이 생명체는 자신을 누르고 있는 빗자루를 벗어나 쓰레받기 위로 올라가려고 발버둥을 친다. 하지만 전혀 움직이지는 못한다.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다. 비닐에 넣어서 버릴까? 눈 밭에 그냥 던져 버릴까?

순간, 이 생명체를 귀엽다고 말했던 직원이 잠시 사무실에 들어가더니 스티로폼 박스를 가져와 거기에 일단 두자고 한다.

아마도 택배로 어떤 물건을 배송받은 상자인 것 같았다.  나는 흔쾌히 그러자고 했다. 당장 이 생명체를 죽이는 일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는 선택이었다. 나는 살며시 그 생명체를 20Cm  정도 되는 정육면체 스티로폼 상자에 내려놓았다. 나의 이 생명체 처분에 대한 나의 책임도 함께 내려놓았다.  이제 괴생명체에 대한 결정은 이 건물을 운영하는 운영국에서 책임져야 한다.  나는 다시 빈 쓰레받기와 빗자루를 들고 가볍게, 그리고 찜찜하게 사무실로 돌아왔다. 

복도에서 마주친 두더지처럼 생긴 작은 생명체 하나 때문에 많은 시간을 허비했다. 무엇이 나를 이렇게 고민스럽게 만들었는지 나는 어렴풋이 안다. 요즘 나는 낚시 방송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살아있는 생명체를 인간의 즐거움을 위해서 죽이는 모습이 보기 싫어서다. 20~30대 때에는 나도 낚시를 즐기며, 그곳에서 회를 떠서 먹었었는데, 이제는 그 행위가 즐겁지가 않고, 오히려 혐오스럽다. 아마도 이런 마음과 같은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그렇게 하루를 지나고, 다음 날 아침 그 생명체의 상태가 궁금했다. 하지만 그러한 사소하고 중요하지 않은 일로 운영국 사무실에 방문하기는 무안했다. 그런데 다행히 점심을 먹고 돌아오는 길에 청소 아주머니를 만났다. 쥐의 안부를 물었다.

대답은 명료했고, 간결했다.,

"아침에 오니 상자에서 죽어있었다고 하던데요."  아쉬움과 시원한 감정이 동시에 몰아쳤다. 

아마도 어제 이미 그 생명체는 생명이 얼마 남지 않았던 같다. 

하지만 그래도 다행이다. 내 손으로 그 생명체를 죽이지 않았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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