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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

한국 버스 그리고 싱가포르 버스

by 즐거움이 힘 2018. 3.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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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서울에 볼 일이 있어 갈 때면 기차역이나 터미널을 가기 위해 버스를 타곤 한다. 전철과 다르게 버스는 자주 타지 않아 생각지도 않은 차비를 더 내는 경우도 있고, 때로는 작은 어려움을 겪는 경우도 있다.  어느 날 인천에서는 시내버스를 타면서 천 원짜리 지폐를 지폐 투입구에 넣지 않고 기사에게 건네 줘서 핀잔을 들은 적도 있었다


 인터넷에서 퍼옴


최근에는 미처 몰랐던 버스 과금 시스템을 새롭게 알게 된 두 가지 일화가 있었다.

 

한 달 전쯤인가 역에 도착하여 집에 가기 위해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탔다. 어차피 환승을 해야 하기 때문에 시내로 향하는 버스를 무작정 탔다. 버스에서 내린 후 집앞까지 가는 버스로 환승을 하는데 또 과금이 되는 것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처음에 탄 버스는 5-3번이고, 환승한 버스는 5-1번이라 동일한 버스로 간주된 것이다. 두 버스는 거의 같은 경로를 운행하는데, 하나는 내가 사는 아파트 앞까지 가고, 하나는 역을 경유하는 전체 노선 중 몇 군데만 다른 곳을 경유하는 버스라서 같은 버스(앞자리가 같은 버스)로 인식 되었던 것이다.

 

두 번째 일은 며칠 전에 있었다. 이날은 기차를 타기 위해 역으로 향하는데 타고 있는 버스가 역에 도착하기 전 고장이 났다. 다행히 기사분이 버스가 이상한 것을 알았는지 회사에 연락하여 같은 번호의 버스가 빈 상태로 정거장에 대기하고 있어 바로 버스를 타고 갈 수 있었다. 대차된 버스를 탑승하기 전 운전기사는 승차할 때 요금이 또 부과될 수 있으니 카드를 찍지 말라는 충고를 친절하게 해주었다. 덕분에 모든 승객들은 버스에 탔고 버스는 문제없이 역에 도착했다. 그런데 나는 목적지에 내리면서 습관적으로 카드를 단말기에 대고 말았다. 카드 단말기에서는 카드는 승차할 때 앞문에서 찍으라는 메시지가 나왔고, 과금도 되었다. 어떤 상황인지 파악도 되기 전에 버스는 떠났고, 정류장에 남겨진 나는 생각해 잠겼다. 생각해 보니 내릴 때 버스카드를 찍으면서 새로운 과금이 된 것이었다. 국내 버스는 앞에서 찍으나 뒤에서 찍으나 모두 과금이 되기 때문에 이런 일이 생긴 것이다. 나는 그날 같은 버스를 연속으로 두 번 탄 것이 된 것이다.

 

이러한 에피소드들을 겪으면서 나는 싱가포르에  3여 년 살면서 버스에서 있었던 일화가 떠올랐다.

 

 

 

나 보다 한 달 정도 먼저 싱가포르에 와 있던 식구들과 합류하기 위해 처음으로 싱가포르에 간 어느 날 집 사람과 나는 같이 외부에 볼일이 있어 외출을 하기로 했다. 자가용이 없었던 우리는 버스나 지하철 등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밖에 없었다. 이 날도 역시 버스를 이용하기 위해 집 앞에 있는 버스 정류장으로 우리는 걸어 나갔다. 버스 정류장에 도착할 즈음에 타야할 버스가 정류장에 도착했고, 우리는 별 생각 없이 버스에 탔다.

 

당시 아내는 이지카드라 불리는 싱가포르 교통 카드를 가지고 있어서 별 문제가 없었는데, 아직 교통 카드가 없었던 내가 문제였다. 차비를 내려고 주머니를 뒤져 보니 잔돈이 없는 것이었다. 없는 것은 집사람도 마찬가지였다. 할 수 없이 집사람 교통카드로 두 사람분을 찍으려 했지만 싱가포르 버스는 한 카드는 한 사람만 결제할 수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지갑에는 10달러짜리 싱가포르 돈과 한국 지폐 몇 장만이 있을 뿐이었다. 싱가포르 버스는 현금으로도 탈 수 있지만 거스름돈이 없다. 그러므로 요금을 내려면 10달러(한화 약 만원)짜리를 넣어야 했던 것이다. 싱가포르 버스 요금은 기본 1달러 20센트인가(? 기억이 가물 가물)부터 시작하여 거리에 따라 과금되는 체계이다. 결국 나는 안절부절 하다가 어쩔 수 없이 10달러를 내려 결심하는 순간, 승차문 입구 의자에 앉아있던 중년의 싱가포르 아주머니께서 본인의 동전 지갑에서 돈을 꺼내 기본 요금에 해당하는 돈을 통에 넣으면서 중국어로 우리에게 뭐라고 말씀하셨다. 잘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동작을 보니 내 차비를 내 준다는 말이었다. 생면부지의 외국인이 잔돈이 없어서 10달러를 차비로 내는 것을 차마 볼 수 없었던지 나의 버스 값을 내준 것이다. 순간 나와 집사람은 머리를 숙이며, 탱큐를 반복했다. 만일 한국인이었다면 말으로나마 고마운 마음을 충분히 표현할 수 있었을텐데 말이 잘 통하지 않아 계속 목례와 탱큐만을 반복하다가 우리는 도착지에서 내렸다. 이 일은 내가 싱가포르 생활을 떠 올리면 항상 떠오르는 행복한 사건이고, 내가 싱가포를 떠올리는 이미지이기도 하다.

 

결국 이 일은 내가 한국과 싱가포르의 버스 시스템의 차이를 잘 몰라 일어났던 일이었던 것이다. 싱가포르 버스 시스템은 카드나 현금으로 요금을 낼 수 있고, 앞문으로 타고, 뒷문으로 내리는 것이나 카드를 이용하면 환승이 되고, 벨을 누르면 버스가 다음 정류장에서 서는 것 등은 우리나라와 매우 비슷하다. 하지만 중요한 차이도 몇 가지 있다.

 

첫 번째 버스 카드는 승차할 때 앞쪽 단말기에서만 찍어야 한다. 간혹 뒷문으로 타는 사람들도 있는데, 앞쪽 단말기로 와서 다시 찍어야 하고, 성난 운전기사의 표정과 충고를 듣게 된다. 때로는 승차를 거부 당할 수도 있다. 절대로 하지 말기 바란다.

 

두 번째요금은 거리에 따라 차이가 난다. 뒤쪽 단말기는 거리를 계산하여 과금하는 역할을 한다. 그러므로 정류장에 내리면서 뒤쪽 단말기에 카드를 찍어야지 미리 찍으면 이 또한 불법이다.

 


세 번째카드는 한 명만 과금할 수 있다. 한국처럼 한 번에 두 명씩 과금되지 않는다. 이유는 거리에 따라 요금이 다르기에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싱가포르 버스에서는 가끔 불심검문(?)을 한다. 엄밀히 말하면 불심검문이 아니라 검표 행위이다. 이는 정해진 장소에서 하는 것이 아니라 임의의 정류소에서 임의의 날짜, 시간에 버스 회사의 검표원이 버스에 탑승하여 모든 승객의 카드와 영수증을 검사한다.

승차한 검표원은 모든 승객의 카드를 받아 그들이 가지고 다니는 카드 단말기에 찍어 카드를 승차 시 찍었는지를 검사한다. 현금으로 차비를 냈을 경우에는 운전기사가 승차 시 영수증을 끊어준다. 이 영수증을 보여주면 된다. 이것은 버스 내리기 전까지 반드시 가지고 있는 것이 좋다. 만일 제대로 요금을 지불하지 않았거나 카드를 찍지 않았다면 해당 버스의 최장거리 요금의 50배를 지불해야 한다고 한다.

 

싱가포르를 떠나온 지 만 2년이 되었다. 싱가포르의 버스 시스템이 지금은 조금 바뀌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위의 네 가지 정도는 아직 유효할 것이다. 싱가포르에서 있었던 기억이 하나 둘씩 지워지기 시작한다. 아마 시간이 더 지나면 지금 적었던 이런 기억들도 지워지고 말 것이다. 하지만 당시에 나에게 베풀어줬던 싱가포르 아주머니의 1달러 20센트는 내가 싱가포르를 기억하는 한 영원히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

그리고 한국의 버스 시스템도 나에게 익숙한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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