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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생활

May I help you? 그리고 영어

by 즐거움이 힘 2013. 12.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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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 이상을 한국에서만 살아온 나 같은 사람이 외국에서 살면서 쉽게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바로 언어 문제이다. 어쨌든 10여 년 동안 영어를 배운 덕분에 웬만한 영어 단어 정도는 읽고 쓸 수 있지만, 말로 내 의사를 정확히 전하지 못 하고, 듣지 못하는 것은 사람을 매우 난처하게 만든다. 싱가포르로 이사 오기 전 딸과 부인이 먼저 이곳에 와 있었기에 몇 번 싱가포르에 여행 차 온 적이 있다.  올 때마다 이웃 말레이시아나 싱가포르 관광지를 여행하곤 했다. 하지만 먹고 살 수 있는 정도만의 영어를 구사하는 나로서는 물으며 다녀야 하는 여행은 쉽지만은 않다. 그래서 그때는 반드시  딸이나 아들과 동행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애들이 같이 다니려 하지 않는다.

 

처음으로  말레이시아 여행 차 아이들과 함께 갔을 때 일이다. 그날도 아내는 근무 중이라 아들, 딸과 함께 버스를 타고 첫 주변국 여행을 했다. 무사히 싱가포르의 출국 심사와 말레이시아 입국 심사를 마치고, 버스를 타려고 하는데 우리가 가기로 했던 장소에 어떤 버스를 타야 하는지 모르겠는 것이다.(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시티스퀘어라는 그곳은 입국심사국과 육교로 연결되어 있어서 걸어가면 된다.)


영어에 자신이 없던 나는 같이 간 아들과  딸에게 보초를 서고 있는 경찰관에게 물어보라 했다. 하지만 아이들은 창피하다고 싫단다. 참 어이가 없다. 당장 길을 모르는데, 창피한 게 문제인가?  어쩔 수 없이 보호자인 아빠가 가야 할 처지가 되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 난 아이들을 뒤에 두고 당당하게 보초를 서고 있는 말레이시아 경찰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몇 번을 입으로 연습했던 그 말을 자신 있게 외쳤다.

"May I help you?" 

그런데 말레이지아 경찰의 반응은 나의 예상과 전혀 다른 반응이었다. 적어도 외국인에게 친절하게 안내를 해줄 것으로 생각했는데, 그는 나를 멀뚱멀뚱 쳐다만 보고 있었다.

나는 연이어 물어봤다. 

"I want to go city square. What is bus number? "

 

그러나 여전히 나의 예상과는 달리 경찰관은 나를 또 멀뚱멀뚱 쳐다보더니, 예상과는 전혀 다른 말을 나에게 퍼부었다. 긴 영어를 오랫동안 말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도저히 못 알아듣겠다. 미국인이나 영어권 사람의 발음이면 알아듣겠으나 이건 말레이시아 영어라서라고 그럴 거야 생각하며 귀를 더욱 기울였다. 다행히 몇 개의 숫자 단어가 귀에 들어온다. 아, 저게 버스 번호구나하고 나는 판단했다.


하여튼, 대충 알아들은 것 같은 생각에 "OK! Thank you!" 라고 말하고 자리를 뜨려고 하는데,

경찰이 또 물었다. "Do you understand?"  그리고 연이어 묻는다."Do you understand?" 

이 경찰이 날 바보로 아나? 생각하며,  힘차게 "Thank you "를 외치고, 나는 당당하게 아이들이 있는 곳으로 갔다.  

"170번 버스 타란다. 가자!!"


버스를 타면서  운전기사에게도 다시 한 번 가는 곳을 물었더니, 버스 기사도 뭐라고 얘기를 하는데, 자기가 내리는 곳 알려줄 테니 내리라는 말 같았다. 아까 경찰관보다 훨씬 친절한 버스 기사다. 그리고 5분 정도 가니 버스 기사가 내리란다. 헌데 내려보니 낯이 많이 익은 건물이 보였다. 아뿔싸, 아까 그 심사국 건물이다. 그리고 사람들이 걸어서 이쪽으로 넘어 오는 모습도 보인다. 이런 낭패가 있나! 아까 경찰이 한 말은 걸어서 가도 되는데 버스틀 꼭 타고 가야 한다면 자기가 말한 버스를 타고 가라는 것이었다. 무식하면 몸이 고생이다.


어쨌든 아이들과 무사히 말레이시아 조호바루 구경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부인에게 마치 전장에 나가 승리를 하고 돌아온 장군 마냥 무용담을 늘어놓았다. 혼자 아이들을 데리고, 외국 여행을 다녀오니 흐뭇하기 그지없다. 


밤이 깊어 잠자리에 들 시간, 침대에 누우니 잠이 잘 오지 않는다. 오늘 하루 멋진 아빠의 모습을 아이들에게 보여준 것이 나름 대견했다. 그리고 외국에서 영어로 길도 물어보고, 이제 세계 어디든 다닐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잠이 들기 전 그날 한 나의 행동을 복기했다. 아주 자랑스럽게.

마치, 2002년 월드컵 때 안정환의 헤딩골 장면이 십 년이 넘은 지금도 케이블방송에서 나오듯이 나도 오늘 나의 무용담을 복기했다.


말레이시아 넘어가 경찰에게 길을 물어본 순간부터.

"May I help you?" .....???

"May..... I..... help......... you?"...........?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뭔가 틀린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발끝부터 스멀스멀 기어 나왔다.

갑자기 나도 모르게 내 얼굴이 빨개지는 것을 느꼈다. 나도 모르게 입에선 욕도 나왔다.

"아~~~~씨바!!!  아......이게 아니잖어!!

 

그건 외국인들이 한국에서 길을 못 찾고 헤맬 때 쓰라고 중, 고등학교 시절 죽어라 외운  문장이었던 것이다. 친절한 한국인이 되라고 하면서..

 "아~~~~~ "

다시 저절로 입에서 탄식이 나왔다.

친절한 한국인이 되라고 가르쳐 준 말을  열심히 근무를 서고 있는데 말레이시아 현지 경찰관에게 당당히 다가가서는  "뭐 도와줄까?" 라고 하고, 한 술 더 떠 바로 옆에 있는 건물에 버스타고 가려면 어떻게 가야라고 물으니 말레이시아 경찰관이 당황했던 것이다. 더구나 자기가 보기엔는 자기 말을 전혀 이해를 하지 못하는 것 같은데, 자신있게 "OK"만 외치는 나를 보니 나에게 계속하여 Understand?를 연발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무식하면 진짜 용감하다!. 그러나 한없이 쪽팔린다.

그래서 난 그날 쪽팔림에 한 숨도 못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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