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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에 살어리랏다

[아라리사람들]마른 논에 물 들어가는 것과...(201804)

by 즐거움이 힘 2018. 8.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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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군청 기관지 "아라리 사람들"에 명예 기자를 맡으면서 "아리리 사람들"에 기고한 글들 입니다. 아래 링크를 누르시면 "아라리 사람들"의 다른 호나 다른 글을 보실 수 있습니다.


정선군청 소식지 아라리사람들 




"더 먹어라!" "아니, 많이 먹었어요! 이제 그만 좀 주세요." "마른 논에 물 들어가는 것과 내 새끼 입에 밥 들어가는 것이 제일 좋은 거여.“

며칠 전 아흔이 가까운 어머니와 밥을 먹으면서 나와 어머니가 나눈 대화다. 매번 그렇듯이 어머니는 나에게 더 먹으라며 음식을 밀어주시고, 나는 약간 짜증 섞인 목소리로 거절한다. 이것이 한두 번이 아니다. 자꾸 연세 들어가시는 어머니에게 더는 그러지 말아야지 하지만, 매번 집에 들를 때마다 반복되는 모습이다.

 

일 때문에 인천에 온 김에 학교에 다니기 위해 마련한 아들의 원룸 자취방에 들렀다. 앞으로 아들은 대학을 마칠 때까지 이 방에서 생활하며 학교에다녀야 한다. 처음 방을 마련해줄 때만 해도 다 큰 놈이 혼자 알아서 하겠지!’ 했는데 막상 아들 혼자 사는 방의 모습을 보니 괜히 마음이 무거워진다. 아들은 대학 1년 동안 기숙사 생활을 하였고, 이제야 비로소 진정한 독립생활을 시작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아버지인 나로서는 여러 가지로 마음에 걸리는 것이 당연한지도 모르겠다. 혹시 제 시간에 학교는 잘 가려나? 아침밥은 먹고 다니려나? 빨래는 할 줄 아나? 청소는 잘 하려나? 형광등이 나가면 교체는 할 수 있으려나? 아주 수만 가지 잡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다 컸으니 알아서 할 거야라고 다시 한번 다짐하지만 그런다고 마음이 놓이지는 않는다. 자꾸 마음에 걸린다. 얼마 전 집사람과 대화 중 누구에게 무엇을 해 줄 때는 내 마음이 편한 대로 하는 것이 제일이고,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면 된다는 것에 대하여 의견 일치함을 우리 부부의 천생연분이라는 말로 치장했던 기억이 났다. 그래서 난 아들에게도 내가 마음 편한 쪽으로 그리고 할 수 있는 만큼 하기로 했다.

 

밥이 세상에 제일 맛있다는 아들을 위해 쌀 20kg짜리로 넉넉히 사다 놓고, 혹시 바쁘면 못 해 먹을지도 모르니 즉석 밥도 몇 개 사다 놓고, 정수기가 없으니 당분간 충분히 먹을 수 있는 양의 생수도 사다 놓고, 아들이 좋아하는 마늘 초절임, , 스팸, 참치 몇 가지와 밑반찬 몇 가지도 사다 조그마한 냉장고를 가득 채워 놓고, 아침에 국 없이 잘 먹지 못하는 아들을 위해 즉석 곰탕 두 종류와 곰탕엔 파가 있어야 하니 파도 사다가 좀 썰어 담아 놓고, 마늘도 조금 쪄 놓고, 마지막으로 즉석 카레도 사다 놓으니 마음이 조금 가벼워진다. 하지만 금세, 인스턴트 음식이 너무 많은 것 같아 아들이 좋아하는 계란과 돼지고기를 사다가 내가 잘하는 장조림을 해서 냉장고에 채워 두고, 근처 국밥집에 둘러 국 3인분도 사다 냉동고에 얼려 두고, 마지막으로 근처 큰 형님 댁에서 밑반찬 몇 가지 더 얻어다 냉장고에 채워 놓았다. 마지막으로 몸이 아파 밥 해먹을 수 없으면 근처에 있는 큰아버지 집에 가서 먹으라는 최후의 방법까지 아들에게 알려주고 나니 이제 진짜로 마음이 놓인다.

 

정선으로 돌아가기 전, 머리가 부딪칠 것 같은 작은 앉은뱅이 상에 마주 앉아 아들과 밥을 먹다 보니 어느 순간 내가 집에 갈 때마다 이것 먹어라’, ‘저것 먹어라’, ‘이거 가지고 가라’, ‘저거 가지고 가라하시던 어머니의 모습을 내가 내 아들에게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어머니가 늘 나에게 하시던 마른 논에 물 들어가는 것하고, 내 새끼 입에 밥 들어가는 것이 제일 좋다.’는 말을 밥 먹는 아들 모습에서 실감하며, 늙으신 어머니에게 미안한 마음이 순간 내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었다. 더불어 다음부터는 어머니가 떠 주는 밥 한 숟가락도 맛있게 먹어야겠다는 이유 있는 다짐을 아들과의 밥상에서 또 한 번 해본다.



아라리사람들_20180402.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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