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며칠 한국의 외신과 싱가포르 신문을 대문짝만하게 장식하는 것이 지난 일요일(12월 8일) 싱가포르 리틀인디아 거리에서 일어난 싱가포르 폭동이라 불리는 사건이다. 경찰국가, 법치국가 싱가포르에서 무려 44년 만에 일어난 폭동이기에 싱가포르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깜짝 놀라고 있다. 더욱이 싱가포르에 사는 나와 같은 사람은 직접적인 관련이 있을 수 있으니 더더욱 관심이 가는 사건이기도 하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말하면 한국에서 한국인이 생각하는 사회변혁을 추구하는 성격의 사건은 아니다. 하지만 싱가포르인들과 싱가포르 정부에서 보기에는 큰 사건임에 틀림은 없다.
싱가포르는 참 깨끗한 도시다. 그리고 강력한 법을 시행하고, 법을 잘 지킨다고 알려져 있다. 거리에서 담배를 피지도 못하고, 껌도 못 씹고, 휴지를 버리면 안 되고, 술을 잘 먹지 않는다고 알려졌다. 사실 싱가포르에는 껌은 팔지 않고, 흡연구역은 대부분은 정해져 있고, 거리에 쓰레기도 날아다니지 않고, 거리에 술 먹고 술주정 부리는 사람을 볼 수 없다. 그리고 교통법규도 우리나라보다 훨씬 잘 지킨다. 그래서 난 싱가포르가 좋다.
아마 본인이 싱가포르에서 가장 많이 가 본 거리를 꼽는다면 단연 리틀인디아이다. 이유는 본인이 매주 운동하는 운동장이 리틀인디아 거리와 붙어있어 매주 이곳을 지나기도 하고, 이곳의 이국적인 느낌이 좋아 자주 방문하게 된다. 그리고 또 하나의 이유는 류시화의 책 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 때문이다. 책을 읽고 가진 인도에 대한 그리움과 동경을 이곳에서 풀려고 했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막상 이곳을 수없이 방문하고, 인도 사람들을 접촉하면서 느끼는 생각은 약간의 배신감이었다. 내가 생각했던 순수함은 없었고, 거리는 지저분하고, 질서는 없고, 버스를 탈라치면 남들에 대한 배려가 너무 없다. 싱가포르에서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자동차 클락션 소리를 이곳에서 한국에서처럼 많이 듣는다. 그리고 신호등과 횡단보도는 특별히 필요가 없다.
주말에 리틀인디아에 가면 거리가 메워 터진다. 이곳을 찾은 관광객도 많지만, 리틀인디아 옆 잔디밭이나 이구석 저구석에 보면 어두운 조명 아래 술 먹는 사람들과 돈내기 포카를 하는 인도계 사람들이 잔뜩이다. 그들이 사람들에게 해를 입히지는 않지만 이방인들은 혼자 다니기가 겁날 정도이다. 그래서 일부 관광객들은 무섭다고 리틀인디아에 다니지 않는다. 주말마다 이곳에 모여 술을 먹고, 포카치고, 운동하고 수다를 떠는 인도계 사람들은 왜 이곳으로 모일까? 그들이 이곳에 모이는 첫 번째 이유는 이곳에 가면 자기와 같은 처지의 동료들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큰 원인 중에 하나는 이곳 말고 쉬는 날에 그들이 머무르거나 즐길 곳이 없다는 것이다. 알다시피 싱가포르의 집 값은 상상을 초월한다. 우리나라 아파트 방 한 칸이 월 80-100만 원이다. 그런데 이곳에 온 이주 노동자들의 급여는 거기에도 훨씬 미치지 못한다. 그러기에 그들은 한방에 20-30명 씩 자는 기숙방 형태의 방을 임대해 거주하며, 거기에서는 잠만 자는 공간으로 사용한다. 심지어는 건물 건축 현장에 스치로폼을 깔고 자는 노동자도 부지기수다.
싱가포르의 국민소득은 5만 불을 웃돌며 세계 10위안에 드는 소득을 자랑한다. 그러나 반면에 빈부격차는 세계 어느 나라보다 심한 나라로 평가되고 있다. 특히 이주 노동자들의 급여와 생활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세계 최고의 부자나라에서 복지나 혜택은 전혀 없이 극빈층 생활을 하는 이주 노동자들은 착하고, 순한 양 같지만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폭탄이기도 하다. 그들에게 미래는 없다, 쪽방에 쭈그려 자면서 돈 모아 자신의 가족들에게 보내는 것이 유일한 희망이자 꿈이다.
지난 일요일 폭동을 돌아보자.
그들은 그날도 어김없이 20-30명씩 살고 있는 쪽방에 있는 것보다 동료들이 많이 모이는 리틀인디아로 관광버스를 타고, 친구들과 맥주 한잔을 위해 향했다. 해 질 녘 도착하여, 어두운 조명 아래 잔디밭에 앉아 서로의 소식을 전하고, 가족 얘기를 하면서 맥주를 마시고 있다. 그런데 바로 옆 도로에 나와 같은 처지의 동료가 술에 취한 채 무단 횡단을 하다가 버스에 치여 즉사하고 만다. 이것을 본 주위의 동료들이 우르르 모이게 되고, 일부 흥분한 친구들은 버스 운전사와 버스에 분노하여 버스에 쓰레기와 병들을 던지기 시작한다. 이것이 결국 우리가 말하는 폭동의 시작이다. 사고 낸 버스를 향하던 분노는 제지하는 경찰과 경찰차로 향하게 되고 결국 이것은 더 큰 사건으로 변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조직되지도 계획되지도 않은 순간적인 감정 폭발이라 일회적으로 끝나고 만다. 특히 싱가포르에서 쫒겨나면 당장 생계가 막막한 이주 노동자들로서는 더 이상 저항하거나 싸울 수 없었을 것이며, 일부 분노한 인도계 청년들만이 경찰과 공권력에 대항하다 체포되거나 해산되고만다.
즉 그날은 사고는 시리아나 중동에서 일어나는 사회 변혁적 성격의 시위나 데모라기 보다는 아주 작은 사건이 군중들의 감정을 자극하여 결국 폭동이라 불리는 사건의 형태로 나타난 것이다. 하지만 이 사건이 가져오는 파장은 작지 않을 듯 싶다. 특히 이주 노동자들에 대한 불만을 가지고 있는 싱가포르인들의 불만이 폭발할 수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외국인 이주정책에 대한 근본적인 수술이 필요할 것이고, 이는 싱가포르에 있는 수 많은 노동자들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싶다. 더불어 아주 많은 이주 노동자가 거주하고 있는 한국에서도 이와 유사한 사건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경각심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난 이 사건을 폭동이라고 부르기를 주저한다. 물론 분노한 사람들에 의해 경찰차가 파손되고 불탔지만, 한국에서 정권에 반대하면 종북이요, 시위가 좀 지나치면 폭력 난동이라 표현하며 사실을 왜곡하던 한국의 일부 언론과 이를 이용하던 일부 정치세력들에 대한 기억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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