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오후, 부음을알리는 전화를 지인으로부터 받았다. 돌아가신 분이 아흔이 넘은 친구의 어머니이기에 오래전부터 그분의 죽음을 예상하기는 했었지만, 막상 부음 소식을 듣자 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상주와 나는 30년 지기이고, 투병 중인 어머니를 정선 요양원에 모시자고 권유한 것도 나이기에 소식을 듣자마자 장례식장을 찾았다. 장례식장에 차려진 빈소에서 절을 하고 상주와 인사를 나누고 나니, 예전에 보았던 “그대를 사랑합니다”라는 책에 나오는 한 구절 “이 세상에 호상(好喪)은 없다“라는 문구가 떠올랐다. 우리는 연세 많은 어른이 노환으로 돌아가시면 쉽게 호상이라는 말을 쓴다. 하지만 돌아가신 분이 만수(萬壽)를 누리고 편안히 돌아가셨을망정 세상을 떠난 것은 마찬가지고, 그를 떠나보내야 하는 자식들의 아픔은 헤아릴 수가 없는데 어찌 호상이라는 말을 쓸 수 있단 말인가? 그 말이 내포하는 뜻이 무엇인지는 알겠으나 쉽게 써서는 안 되는 말인 것도 분명해 보였다.
상주의 고향이 서울이었고, 정선에 이주했던 것이 몇 년 되지 않아 상주는 부고를 알리는 것은 자신의 지인들에게 폐를 끼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결국 부고를 전하지 않았고, 조의금도 받지 않았다. 더구나 코로나로 인해 가까운 지인들만 빈소를 찾은 관계로 장례식장은 한산했다. 게다가 장례식장에 빈소가 차려진 곳은 이곳 한 곳뿐이어서 장례식장 전체가 더욱 더 쓸쓸하게 느껴졌다. 그나마 몇 몇 지인들 이름으로 보내온 조화가 상주와 망자의 슬픔을 덜어 주는 것 같았다. 그리 몇 안 되는 손님을 맞이하면서도 상주는 자리에 오래 앉아 조문객들과 얘기를 나눌 수 없었다. 틈틈이 이뤄지는 장례 예식이 상주를 호출했다. 장지를 정하는 것부터 고인을 입관하는 일까지 예의를 갖추는 일들이 상주를 찾았다. 상주들은 쉼 없이 여러 사람들과 여러 가지 의논을 했고, 장례식장에 맞춰진 예식 순서에 따라 기계적으로 움직였다. 그렇게 이틀이 지나고 삼 일째를 맞은 새벽 5시 30분부터 발인은 시작되었고, 또 정해진 예식에 따라 발인 되어 화장장에서 예식을 거친 후 고인은 이 세상을 영원히 떠났다.
삼일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상주는 끊임없이 몸을 움직여야 했다. 장지나 빈소 차림을 비롯하여 손님맞이, 그리고 장례식장의 예식 순서에 따라야만 했다. 발인이 끝나도 예식은 끝나지 않았다. 삼우제도 있고, 누군가 죽었다는 것을 서류상으로도 정리해야만 한다. 그렇게 며칠을 더 보내야만 서류상으로나마 죽은 자는 이 세상을 떠난 사람이 된다. 하지만 그렇게 서류상으로 세상을 떠난 사람이 되어도 재산이나 부채가 있다면 그의 삶은 정리한 것이 아니게 된다. 세상에 곳곳에 그의 흔적이 남아 있기 마련이고, 흔적이 지워지는 속도로 기억에서도 지워지게 된다. 망자를 떠나보내는 일련의 예식과 절차는 아주 귀찮고 번거로운 일이다. 하지만 한 사람의 일생을 지운다는 것이 절대 간단해서는 안 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세상사는 동안 사회와 공동체에 그의 역할이 중요하지 않았어도 살아 있는 동안 망자인 그의 삶은 그의 전부였을 것이다. 또한 그의 가족과 지인들에게는 아주 소중한 존재였을 것이다. 어찌 보면 우리 선조들의 장례 절차는 번거롭고 형식적이다. 그리고 초스피드시대인 현대에는 맞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우리 선조들은 떠나는 자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갖추려고 했었다. 아마도 우리 선조들은 시간이 지나면 어쩔 수 없이 잊게 되는 망자의 삶을 최소한 느리게 지우려고 했던 것이 아닐까 한다. 클릭 한 번으로 모든 것이 이뤄지는 현대에도 천천히 잊히도록 하는 것이 세상을 떠나는 자에 대한 살아 있는 자들의 최소한의 예의가 아닐까 나는 생각한다.
'정선에 살어리랏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라리사람들202204]코로나 그리고 나 혼자 산다. (1) | 2022.06.02 |
---|---|
[아라리사람들]문해교육과 AI(인공지능) 시대 그리고 2022년(2022.02) (0) | 2022.02.11 |
[아라리사람들]기성세대, 아재, 꼰대(2021.10) (0) | 2022.02.11 |
[아라리사람들]미증유(未曾有)(2021.08) (0) | 2022.02.11 |
[아라리사람들]효과적인 귀농인 정착을 위한 제언(2021.06) (0) | 2022.02.11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