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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에 살어리랏다

[아라리사람들202204]코로나 그리고 나 혼자 산다.

by 즐거움이 힘 2022. 6.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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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에 거주하고 있는 아들이 지난주 일요일 중요한 시험을 치뤘다. 오랜 시험 준비로 몸과 마음이 약해지고, 긴장이 풀려 그런지 시험 끝난 며칠 후부터 몸에 기운이 없고, 밥맛이 없다고 했다. 우리 가족 구성원은 4명이지만 지금은 각기 다른 지역에서 살고 있다. 나는 정선에, 원주에 살던 아내는 3월부터 직장이 있는 평창에, 딸은 직장이 있는 지방에, 그러다 보니 주말에만 같이 모이고, 원주 본가는 아들이 혼자 독차지하고 살고 있는 셈이 되었다. 덩치가 산 만한 아들이 아파하는 것이 안쓰러워 아들이 좋아하는 국밥을 포장해서 원주로 가서 함께 먹었다. 국밥 한 숟가락을 뜨는 순간, 혹시와 설마하는 마음이 스쳐갔지만, 미심쩍게 떨쳐 내고 식사를 마쳤다. 하지만 잠깐의 이 마음은 밤새 깊게 남아있었다. 다음 날 아침 아들의 몸 상태만 확인한 채 도망치듯 출근하여 일을 마친 후 저녁에 원주 집에 돌아오니 금요일이라 아내가 와 있었다. 방금 막 도착한 듯한 아내는 마스크를 쓴 채 선명히 난 두 줄의 신속항원 키트를 옆에 놓고, 집안 여기저기를 소독하고 있었다. 자가 테스트 검사 결과 아들이 코로나 양성 판정이 나온 것이다. 날이 밝는 대로 PCR 검사를 받기로 하고 집안 소독과 환기를 시키고, 서로의 동선을 분리하고 우리는 내일 모두 각자의 거처로 떠나기로 했다. 아내는 마스크를 벗지도 않은 채 조심하며 생활했기 때문에 문제가 없을 것 같았지만, 어제 아들과 식사를 한 내가 문제였다. 어쨌든 다음 날 아들은 아침 일찍 PCR 검사를 했고, 나와 집사람은 각자 평창과 정선으로 돌아갔다.

아들의 PCR 검사는 다음 날 양성으로 판정되었다. 이때부터 정선에 머물고 있던 나는 찜찜함을 떨칠 수가 없었다. 몸에 이상은 없었지만, 모두의 안전을 위해 아내와 나는 월요일 PCR 검사를 각각 받기로 했다. 월요일 아침 계획되어 있던 모든 약속을 취소하고, 정선 보건소로 갔다. 이미 많은 사람이 검사를 위해 보건소에 와 있었다. 어떤 사람은 직장 출근을 위해, 어떤 사람은 같이 모임을 했던 사람이 양성이라, 어떤 학생들은 기숙사 입소를 위해 보건소로 달려온 것이다. 처음 하는 검사라 생소했지만, 생각보다 빠르게 검사는 마무리되었다. 이제 집에 돌아가 격리한 채 판정을 기다리면 된단다. 만일을 대비하여 잠겨있는 정선 사무실에 들러 컴퓨터를 챙겨 집으로 향했다. 아직 판정은 나지 않았지만, 일주일 격리 생활을 준비해야만 했다. 나는 컴퓨터와 인터넷만 된다면 세상 어느 곳에서도 혼자 살 수 있다고 늘 장담했었다. 막상 집에 들어와 컴퓨터를 설치하고 일을 하려 하니 무엇부터 해야할 지 손에 잡히지 않았다. 그렇게 하루가 지났다. 평창으로 간 아내는 음성이라고 한다. 다음 날 오후에나 나올 예정이라는 나의 검사 결과는 아침 9시에 경 빠르게 나왔다. 양성이었다. 이어 질병관리청, 보건소, 군청 등으로부터 주의 사항이나 행동요령에 관련한 문자와 전화가 계속 왔다. 꼼짝없이 이제 일주일을 집에 혼자 살아야 한다. 혼자 주의하며 살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을 자신은 있는데, 느닷없이 방문하는 외부 사람들이 걱정이었다. 집 앞에 금줄을 칠 수도 없고, 가끔 뵈는 옆집 할아버지도, 앞집 할머니도 걱정이었다. 경조사 알리듯 주소록의 모든 사람에게 알릴 수도 없는 노릇이다. 혹시나 마주치거나 연락이 닿는 사람들에게 사정 얘기를 하고 근처에 오거나 만나지 말자고 당부를 하는 수밖에 없다. 첫날에 쏟아지던 문자와 연락은 이틀 후부터는 점차 사라졌다. 무증상자는 스스로 알아서 챙겨야 하는 모양이었다. 나는 백신을 3차까지 맞은 덕분에 코감기 외에는 특별한 증상이 없었다. 결국, 나는 내가 장담했던 대로 컴퓨터와 인터넷만으로 일주일 동안 나 혼자 살게 되었다. 그리고 격리 삼 일째 되는 날, 밤새 대통령 선거 개표를 보며 세상은 혼자 사는 것이 아니라 혼자가 모여 마을을 이루고, 도시를 만들고, 나라를 만드는 것이라는 사실을 눈으로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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