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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

닭과의 전쟁

by 즐거움이 힘 2014. 9.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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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한국에 왔다. 아들 군대 입대 때 왔으니 거의 1년 만이다. 장기간 한국에 있어야 하는데, 잘 곳이 마땅치 않아 처가 어른들이 마련해 놓았지만 잘 관리하지 못하는 산 속의 농가 주택을 거주지로 삼기로 했다. 



몇 몇 농작물과 닭 2마리만이 이곳에 살고 있다. 원래 3마리의 강아지와 10여 마리가 넘는 닭이 있었으나, 한 동안 교통 사고로 두 분이 모두 병원에 입원하게 되어 다른 사람들에게 분양해 주었다. 농작물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동물들을 굶길 수 없으니 이젠 더 이상 기르지 않기로 했다. 그런데 막상 병원에서 퇴원을 하고 가끔 농가 주택에 오시는 장인은  동무해 놀 수 있는 동물이 없어서 심심하셨던 같다. 그래서 급기야 어제 큰 닭 4마리를 사가지고, 처제와 함께 승용차 트렁크에 싣고 오셨다. 닭 4마리는 여기저기를 묶인 채 박스에 담겨 실려 내가 머물고 있는 곳으로 왔다. 




그리고 차가 집 앞에 도착한 후 모두들 눈만 멀뚱거리면서 내가 무엇가 하기만 기다렸다.  즉, 차 트렁크 박스에 있는 네 마리 닭을 마치 UFC 경기장 같은 닭장까지 옮겨야 했고, 묶은 끈을 모두 풀어 닭들에게 자유를 주는 것이 내 임무가 되었다. 닭 대가리만 불쑥 내밀고, 요동치는 박스를 옮기는 것을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하지만 어쨌든 박스를 옮기고, 닭을 한 마리씩 꺼내 다리의 끈을 가위로 끊어 주었다. 



다리에 묶은 끈을 끊어 주는 동안, 닭의 공격으로부터 나를 보호하기 위해 닭을 유심히 관찰해 보았다. 가끔 술 안주로 먹는 닭의 발은 귀여운데, 이 닭의 발은 살기가 느껴진다. 아마도 이 발로 맞으면 살아남지 못할 듯싶었다. 내 눈에는 마치 독수리의 발 같이 보였다. 그리고 한 손으로 잡은 닭의 몸 둥아리에서는 따듯한 닭의 체온이 고스란히 나에게 전달 되었고, 눈을 껌벅거리지도 않고 머리를 든 채로 어딘지 모르는 곳을 응시하는 닭의 모습은 처량해 보이기도 했다. 아마도 그 닭은 이 순간 자신의 생명이 다 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나는 조심스럽게 닭의 발에 묶인 끈을 풀거나 잘랐다. 발에 족쇄가 풀린 닭들은 내가 손을 놓자 쏜살같이 달아났다. 닭들이 달아 날 때마다 내 마음도 줄어든 닭 수만큼 가벼워졌다. 그렇게 닭들의 모든 끈을 풀어주었다. 이제 나만 자유를 얻으면 되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그 순가 처제가 나에게 한 마디했다. 그리고 약속이 있으신 그녀의 부모님을 모시고 떠났다.

 "형부 저 큰 닭 두 마리는 날개를 안쪽으로 묶었어요. 그것도 풀어야 해요". 

그것을 미리 말을 해야 날개를 풀고, 다리를 풀었을 텐데, 이제 발이 자유로운 닭을 잡아 날개의 끈을 풀어줘야 하는 것이다. 한번도 닭을 잡아 본 적이 없는 내가 저 큰 닭을 잡아야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나와 닭과의 닭장 안의 격투가 시작되었다.  아니 사실 나는 닭들에게 자유를 주기 위해 닭을 잡으려 하는 것이고, 닭들은 내가 자신들을 잡아 먹으려 하는 줄 알고 도망다니는 신세가 된 것이다.

역시 닭 대가리다. 조금 전에 내가 끈을 풀어주었는데, 전혀 기억하지 못하고 날 뛰었다. 더욱이 두 마리의 끈만 풀어주면 되는데, 총 6마리가 함께 날며 도망 다니니 닭장 안은 닭 깃털과 먼지로 뒤 덮혔다. 마치 서부 영화에서 말 무리가 지나간 후의 장면처럼 되었다. 마음 같아서는 그냥 끈 묶인 상태로 살아라 하고 싶었지만 사람 마음이 그렇지 않다. 날지 못하여 서러운데, 그렇다고 날개마저 묶어 놓으면 나는 흉내도 못내니 얼마나 불쌍한가?



그리하여 나는 가장 큰 두 마리의 닭을 반드시 잡아 묶은 끈을 꼭 끊어 주기로 마음 먹었다. 다시 긴 옷으로 무장을 하고, 손에는 코팅 된 내가 좋아하는 빨간 장갑을 끼고, 등산화를 신고, 닭들을 코너로 몰았다. 이제 나는 노예 해방을 위해 싸우는 스파르타쿠스로 변한 것이다. 닭들은 생각보다 쉽게 코너로 몰 수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6마리 닭이 같이 있다는 것이다. 내가 원하는 닭만이 아니라 깡패처럼 그들은 몰려 다녔다. 그리고 큰 닭 한 마리만 코너에 몰아 이제 잡기만 하면 되는 결정적인 순간에 난 닭의 눈을 보았다. 머리를 숙이지 않고, 나에게 뒷통수를 보이고 있는 듯 하지만 닭의 눈은 나를 보고 있었다. 눈을 깜박이지도 않았다. 그 순간 나는 닭을 잡아야 하는데, 어디를 잡아야 할지 선택을 해야 했으며, 만일 닭이 죽기라도 하며 어쩌나? 나에게 덤비면 어쩌나? 하는 별 상상을 다하는 순간 닭은 나의 방심을 틈타 또 포위망을 빠져 나갔다. 


이제 나도 자존심이 상했다. 저 닭들에게 놀림을 당하는 느낌이었다. 나는 다시 닭을 몰았다. 그리고 결국 두 번째로 큰 닭을 먼저 잡기로 했다. 두 번째 큰 넘이 이미 있던 닭들이 알을 낳던 박스 쪽으로 도망갔다. 난 박스를 이용해서 그 넘을 포위했다. 닭은 머리만 보인 채 박스와 벽 사이에 꼼짝을 못하게 끼었다. 이어 나는 박스 안쪽으로 손을 넣어 닭을 잡았다. 그런데 다른 닭이 나왔다. 다른 닭 한 넘이 박스 안에 같이 들어간 것이다. 나는 재빨리 그 넘을 잡아 던지고 다시 두 번째 닭의 몸통을 잡았다. 우리가 흔히 돼지 먹 따는 소리라는 말을 하곤 한다. 그리고 새벽 닭소리는 들었지만 나는 닭 멱 타는 소리를 그 날 처음 들었다. 그 소리는 너무도 처량하고, 구슬펐다. 어쨌든 그렇게 하여 한 마리를 잡았고, 날개 안쪽을 들여다보니 하얀색 노끈을 볼 수 있었고, 나는 그 끈을 닭이 다치지 않도록 끊어 주었다. 그리고 닭을 풀어 주었다. 이제 저 닭은 진짜로 자유를 얻은 것이다. 이제 제일 큰 닭만 남았다.




그런데 큰 닭은 보기만 해도 내가 주눅이 든다. 만일 닭이 나를 공격하면 나는 도망다녀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다시 UFC 2라운드를 시작했다. 제일 큰 닭을 쫒아 다녔다. 닭장 안에는 또 다시 먼지와 닭 깃털이 날리기 시작했고 여기 저기서 닭의 비명소리가 울려 퍼졌다. 누군가 들었으면 내가 아마도 닭을 학살하는 미친넘인 줄 알았을 것이다.


그리고 나의 얼굴에서도 땀이 비오 듯했다. 그렇게 30여 분 동안 사투를 벌이다가 드디어 큰 넘을 또 다시 코너로 몰았다. 이제 손이 재빨리 내려가서 놈의 몸통을 잡아야 하는데, 손이 내려가지 않는다. 마음은 손이 내려가는데 몸의 손이 움직이지 않는 것이다. 드디어 내 손이 닭의 몸 둥아리를 눌러 잡았다. 조심스럽게 날개 안을 보니 역시 끈이 있었다. 그런데 벌써 끈이 몸 깊숙이 박히기 시작했다. 살까지 박히지는 않았지만 이 상태로 오랜 시간 동안 있었다면 닭은 큰 상처를 입었을 것이다. 나는 또 다시 날개 묶인 끈을 가위로 끊었다. 그리고 닭의 몸둥아리를 조심스럽게 놓아 주고 마치 시혜를 베풀 듯이 발로 닭의 꽁무니를 찼다. 닭은 쏜살같이 달아났다. 



이제 나는 모든 닭의 족쇄를 풀어주었다. 나는 닭과 한판 싸움에서 닭에게 자유를 준 투사가 된 것이다. 스파루타쿠스는 실패했지만 나는 성공했다. 


이제 조심스럽게 닭장을 나와 몸을 털고, 손을 씻었다. 그리고 내가 준 자유를 닭들이 얼마나 만끽하고 있는 지를 보기 위해 닭장으로 다시 다가갔다. 닭들은 내가 근처에 오기만 하면 이제 도망 다닌다. 아니 닭장 구석으로 단체로 숨는다. 이런걸 보면 닭 대가리가 나쁜 머리만은 아닌 듯싶다. 


 내가 가만히 보고 있잖니 닭들은 기존 닭과 대장을 뽑는 서열 싸움을 하고 있었다. 끈을 풀어줬더니 싸움은 조금씩 더 치열해 지기 시작한다. 아마도 며칠 안에 서열이 만들어 질 것이다. 그런데 내가 막 끈을 풀어 준 제일 큰 닭은 싸움을 하지 않는다. 아마도 체급이 맞이 않아 싸우지 않는 듯싶었다. 아니면 아주 착한 닭이 던지. 그래서 큰 닭을 유심히 보니 참 난처한 일이 발생했다. 닭의 날개 밑에 붉은 색 노끈이 또 하나가 보였다. 아마도 이 닭은 크기가 커서 여러 개의 끈으로 닭을 묶었었나 보다. 그래서 이 닭은 자유롭지 못하여 싸움에 참여하지 않은 듯싶기도 했다. 하지만 이젠 나도 또 다시 닭장 안에서 닭과 싸움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더 이상 닭을 몰아치면 닭들도 스트레스로 죽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 마지막 미션은 주말에 내려오는 다른 식구들에게 넘기기로 했다. 닭을 잡아 닭 날개가 묶인 끈을 푸는 자에게 푸짐한 상을 내리는 이벤트를 열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거나 난 한국에 온 3일 만에 1평 정도되는 닭장 안에서 닭들의 신체적 자유를 위한 거대한 싸움을 성공하지 못했다. 하지만  스파르타쿠스처럼 십자가에 묶이지는 않았다. 다만 한 마리의 닭의 날개가 여전히 끈에 묶여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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