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 책을 보게 된 것은 실수였다. 언젠가 알라딘 헌책방을 통해 사 둔 2권의 중고 책이 책장에 꽂혀 있었다는 사실과 즐겨 듣는 팟캐스트 빨간 책방에서 김동진이 서양 문학사상 최고의 소설 책이라는 한 마디에 이 책을 집어 들고 말았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모습이 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제각각의 불행한 모습을 가지고 있다"
라는 시대적 명언 같은 문장이 나올 때만 해도 고전을 읽는다는 자부심과 만만함으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 하지만 낯 설고 비슷비슷한 러시아식 이름과 불어 원문이 섞여 나오는 문장들은 나를 지치게 했다. 그나마 조금 다행인 것은 배경이 된 러시아의 도시 이름이나 사회 체제에 대해서는 대학 시절 어쩔 수 없이 보았던 사회 과학 서적에서 보았던 기억이 있었다.
하지만 결정타는 집에 있는 2권이 끝이라 여기며 마지막을 향해 달리던 어느 날 밤, 내용이 끝이 아닐 것 같다는 느낌과 2권의 끝에 괄호 속에 숨어 있는 '3권에서 계속'이라는 문구는 나를 좌절하게 했다. 1권의 509페이지와 2권의 657페이지를 힘겹게 넘어온 후 3권의 583페이지는 나를 쓰러지게 할만 했다. 겨우 정신을 차리고 3권을 구입하니, 마치 정상을 바로 앞에 놓고 오랫동안 쉰 후 다시 올라가는 등산객의 마음과 같이 어쩔 수 없이 책을 끝까지 읽게 되었다.
하지만 내가 이 책을 보게 된 것은 행운이었다. 늘 책 제목을 보면서 안나 카레니나를 안네의 일기의 안네와 별반 다르게 생각하지 않았던 나의 무식함을 적어도 깨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보다 중요한 것은 왜 이 책이 최고의 소설이라고 불리는 줄을 알게 된 것이다. 분명히 이 책을 읽는 내내 읽어 내리기가 힘든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이 책에 나타나는 인간 하나하나의 내면의 모습을 보면서 나를 포함한 모든 사람 생각의 모습들이 나와 다르지 않음을 느낄 수 있었고, 어떻게 이렇게 세밀하게 순간순간을 마치 동영상으로 찍어낸 화면을 마치 슬로우 비디오로 표현하듯이 섬세하게 표현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사랑하게 되는 사람들, 혹은 사랑이 식어 가는 사람들 그리고 사회 속에서 사람이 사람을 만나면서 사람과의 관계에서 각자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사람들의 생각이 상황이 변화면서 어떻게 변화되는지 그리고 그 마음들이 수학의 미분과 적분처럼 쪼개지고, 합해지기를 반복하면서 형성되어 가고 있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 준다.
특히 사랑을 새로 시작하는 사람보다는 사랑이 식어 이제는 그 사랑의 끝을 보려고 하는 사람에게 이 책을 꼭 권하고 싶다. 내 생각이 순간순간 변하듯이, 상대의 생각도 수시로 변하고, 내가 괴로워하는 만큼 상대도 괴로워한다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 알 수 있을 것이다.
나의 흥미 점수는 82점 정도. 80점은 너무 작고, 85점은 내 수준에는 너무 높은 그런 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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