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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에 살어리랏다

[아라리사람들]나의 가슴 속 절대 반지 하나(201906)

by 즐거움이 힘 2019. 8.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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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군청 기관지 "아라리 사람들"에 명예 기자를 맡으면서 "아리리 사람들"에 기고한 글들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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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군청 소식지 아라리사람들 



장롱을 정리하다 발견한 허리 두 동강 난, 반 돈짜리 반지 하나가 내 가슴 속의 절대 반지를 깊은 잠에서 깨어나게 하였다. 이 동강 난 반지는 10년 전쯤 주말부부를 하게 되면서 부인이 커플링으로 만들어준 것이다. 중년의 나이에 커플링을 낀다는 것이 쑥스럽기도 했지만, 나름 색다른 기분이기도 하여 반지를 잘 끼고 다녔었다. 하지만 몇 달 애지중지 끼고 다니다가 그 반지 역시 슬그머니 장롱 속 결혼반지 옆으로 가고 말았다


그리고 내게 커플링이 있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해질 무렵 우연히 그 반지를 다시 보았고, 반가운 마음과 호기심에 반지를 끼워 보았었다. 옛날 생각도 나고 또다시 주말 부부 생활을 해야 하였기에 선물해준 아내 기분을 생각해서 반지를 낀 채로 며칠을 지냈다. 그러던 어느 날, 잠을 자려고 누웠는데 갑자기 손가락에 있던 반지가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한번 신경이 쓰이기 시작한 반지는 마치 손가락에 벌레가 기어 다니는 것처럼 계속 나를 자극했고, 반지를 빼야만 잠을 잘 수가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반지가 쉽게 빠지지 않았다. 결국 나는 거실에서 인터넷 고스톱을 즐기고 있는 아내 옆에 앉아 눈치를 보며 반지 빼기를 시도했다. 그런데 몇 번을 시도해도 반지가 잘 빠지지 않았다. 그냥 자고 나중에 빼자는 마음으로 침대로 돌아갔지만, 마치 손가락에 올가미가 조여 오는 것처럼 느껴져 잠을 잘 수가 없었다. 결국 나는 다시 일어나 손가락에 비누를 바르며, 반지 빼기를 다시 시도했다. 하지만 반지는 손가락 마디까지는 나왔지만 마디의 주름을 넘지 못했다. 마치 좁은 공간에 주차한 차를 빼듯 반지를 앞뒤로 수십 번 반복했지만 반지는 뺄 수 없었다. 그때 문득, 언젠가 인터넷에서 보았던 실로 반지 빼는 방법이 생각났다. 그 방법은 반지 앞에 실을 감은 다음, 실을 반지 밑으로 통과시킨 후 실을 서서히 풀면 실이 반지를 밀어내면서 빼는 원리였다. 나는 슬며시 반짇고리에 있는 실을 한 가닥 뽑아 손가락에 감았다. 그리고 실을 풀었다. 그러나 실을 너무 느슨하게 감아서 그랬던지 실만 풀릴 뿐 반지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몇 번을 했음에도 마찬가지였다. 감고 풀기를 반복했던 실 때문에 손가락엔 모래밭에 뱀 지나간 자국처럼 붉게 생채기가 생겼다. 급기야 내 모습을 안쓰럽게 보던 부인과 대학생 딸이 반지 빼기에 합세했다.



내 손가락의 반지를 빼기 위해 가족이 둘러앉아 큰 수술을 준비하는 의사들처럼 내 손가락을 주시하였다. 그리고 딸이 수술 전 주의 사항을 말하듯이 "나도 전에 그거 해봤는데 4시간이나 걸렸어. 그리고 손가락이 굉장히 아프더라." 딸의 그 말에 당사자인 나는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다. 이미 반지 빼기를 여러 번 시도해서 손가락이 너무 아픈데, 4시간이 걸렸다니 경악할 일이었다. 하지만 나는 굳은 마음으로 부인한테 세게 실을 감아달라고 부탁해 다시 반지 빼기를 시도했다. 그러나 반지는 여전히 빠지지 않았고, 손가락엔 더 깊은 생채기와 이젠 옅은 멍 자국까지 나타나기 시작했다. 안쓰럽게 나를 보던 부인은 급기야 나에게 반지를 자르자고 제안했다. 이 소리는 다리를 다친 환자에게 다리를 잘라야 당신이 살 수 있습니다.”라고 말하는 소리 같았다. 시간이 갈수록 손가락은 아팠고, 육체의 고통은 번뇌의 고통보다 컸다. 그래서 나는 반지를 자르기로 했다. 손가락 아래 쪽 반지의 제일 얇은 부분을 니퍼로 과감히 잘랐다. 반지는 잘림과 동시에 양 끝부분이 날카롭게 되었고, 반지에 눌려 있던 살은 끊어진 반지 사이로 팽창하여 양 끝부분이 살에 박히면서 마지막 아픔을 나에게 선사했다. 반지를 벌려 빼내니 손가락 아래쪽에는 뱀의 이빨 자국 모양으로 두 개의 핏방울이 맺혀있었다. 그렇게 나는 절대 빠지지 않는 절대 반지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반지를 자르고, 허리 잘린 반지를 보니 이젠 육체가 아닌 마음이 아프기 시작했다. 그것은 선물 받은 반지를 두 동간 낸 미안함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아내가 반지 절단을 적극적으로 권유했던 터라 조금은 미안함을 줄일 수 있었다. 반지를 끼었던 내 왼손 약지에 남았던 상처는 흘러가는 시간과 함께 사라졌고, 반지 또한 장롱 속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그 반지는 절대 잊히지 않는 절대 반지를 내 가슴 속에 깊게 새겨 놓아 가끔 이렇게 기억 속에서 꺼내어 볼 수 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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