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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생활

축구, 앤드류 그리고 차범근의 환갑 잔치

by 즐거움이 힘 2013. 12.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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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축구를 무척이나 좋아한다. 그래서 이곳 싱가포르에서도 축구를 하기 위해 이곳저곳 수소문하다가 결국 로컬축구팀(싱가포르인들로 구성 된 팀)에 가입했다. 30여 명의 회원 중 한국인은 오직 나 혼자이다. 대부분 중국계 싱가포르인이고, 말레이시아계와 인도계로 보이는 선수들도 몇 명있다. 말이 잘 통하지 않는 관계로 너는 어디 출신이냐, 몇 살이냐 등 개인적인 사항에 대해서는 문화적 실례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묻지 않았다. 

그런데 가입 후 한 달 정도 지났을 때쯤 현재 우리 팀 총무 역할을 하는 피터(Peter)가 나에게 물었다. 

"How old are you?"

"48세(나는 1966년 임)입니다." 라고 했다. 그랬더니 자기는 53세란다. 그리고 저기 저 친구는 자기와 동갑이고, 저 친구는 아마 나랑 비슷할 것이란다. 그리고 한 분을 가리키면서 저분은 62세고, 이름은 앤드류란다. 오랫동안 축구를 했고, 왕년에 싱가포르 축구대표였던 적도 있다고 한다. 어쨌거나 대충 들어보니 이 팀의 절반 이상의 팀원이 40대 이상이었다. 물론 나머지 반은 20 ~ 30대의 젊은 친구들이다. 

이런 팀원 중에서 나를 잘 챙겨주는 사람이 있으니 그 사람이 이 팀의 가장 연장자인 62세의 앤드류이다. 앤드류는 택시 운전을 한다. 한국의 개인택시와 비슷한 것이다. 일주일 내내 택시 운전을 하고 일요일은 축구를 하기 위해 하루 쉰다. 그리고 이 친구(?)는 항상 나를 집까지 데려다 준다. 앤드류의 집과 우리 집이 비슷한 방향이기는 하지만 같은 곳이 아닌데, 나를 꼭 데려다 준다. 나로서는 너무나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앤드류는 맥주를 좋아한다. 매일 일이 끝나면 맥주를 1~2병씩 마신다고 한다. 술을 많이 먹지 않는 싱가포르 사람들 사이에서 앤드류는 술꾼으로 통한다. 그래서 축구회원들은 가끔 나에게 앤드류 차를 타고 집에 가는 모습을 볼 때마다, 술 먹자는 앤드류에 꾐에 절대 빠지지 말라고 충고와 동시에 농담을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앤드류가 나에게 맥주 한 잔 하지 않겠냐고 진지하게 권 하였다. 자기가 우리 집 근처에서 본인의 친구를 만나는데 같이 가서 점심 먹고, 맥주나 한잔 하고 가라는 것이다. 어떨결에 난 "OK"라 대답하고, 앤드류의 택시를 타고 따라 나섰다. 하지만 말도 안 통하는 싱가포르에서 다른 외국인을 소개받는 것은 참으로 당황스러운 일이다. 말이 통해야 교분을 쌓을 것인데, 말이 통하지 않으니 난감할 뿐이다. 

어찌 되었건 그렇게 하여 앤드류와 함께 그의 친구를 만나기 위해 약속 장소에 도착했고, 먼저 와서 기다리던 그의 친구를 소개받았다. 지금은 이름이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 조이(?)로 기억한다. 앤드류가 나를 소개하면서, 한국인이며 자신과 함께 공을 차는 친구라고 말을 하니 무척이나 반가워했다. 한국 축구 선수들을 잘 알고 있다는 것이다. 알고 보니 이 조이라는 친구는 현재 일본 청소년 축구클럽에서 청소년 축구 지도자 생활을 하고 있으며, 전직 싱가포르 국가대표 축구선수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1972년 ~ 1974년까지 한국에서 수차례 방문하여 한국 대표와 축구 시합을 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김호곤, 김재한, 차범근을 잘 안다는 것이다. 특히 김호곤은 자신의 친구라고 표현을 하기까지 한다. 올림픽 및 월드컵 참가를 위한 예선전을 한국에서 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당시 한국의 축구는 베스트였다고 맥주 잔을 부딪치며 뜨문 뜨문 알아듣고 있는 나에게 열변을 토한다. 멀리 외국에 나와 전혀 모르던 사람에게서 내가 사는 나라에 대한 칭찬과 내가 알고(듣기만 한) 있는 사람에 대한 얘기를 들으니 그 자리가 한결 편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1973년 한국 국가대표팀-출처:다음>


어제 다음(Daum)에서 차범근 선수가 환갑을 맞아 1972년 국가대표 선수들과 한자리에 모여 생일 축하파티를 연다는 차범근의 칼럼을 보았다. 차범근 선수가 무척 들떠있는 것을 글로도 느낄 수 있었다. 만일 위 사진과 그 컬럼을 그날 소개받은 조이에게 보여 준다면 그도 차범근만큼이나 무척 기뻐했을 듯싶다. 그리고 한 사람 한 사람을 호명하며, 지금도 기억한다고 했을 것이다.

내가 일요일마다 앤드류와 축구를 하다 보면 가끔 마음이 아플 때가 있다. 열심히 공을 차고, 공을 쫓아 다니고 싶어하는 열정에 비해 그의 몸이 따라주지 않는다는 것을 내 눈에도 보이기 때문이다. 20 ~ 30대의 젊은 친구와 다툼을 하던 공을 빼앗기고 질주하는 젊은 친구들의 뒷모습을 보는 그의 모습은 나의 가슴을 가끔 아프게 한다.  사람이 몸이 늙어 가는 것은 현실이다. 아시아 축구의 호랑이, 한국 축구의 대들보이자, 영원히 젊음을 가지고 있을 것 같았던 차범근 선수도 벌써 환갑이라고 하니 말이다. 아무도 세월이 가고, 몸이 늙어 가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그러나 그렇다고 주저앉아 세월이 가는 것을 바라보며, 가는 세월에 내 몸을 맡길 수는 없지 않은가?

환갑이 넘은 나이에도 젊은이들과 함께 운동하며, 몸 부딪히는 앤드류와 그의 친구들 그리고 지금도 한국 축구를 위해 열심히 세계를 누비며 활동하는 차범근 선수를 보노라면, 심장이 뛰는 한 우리에게 늙은 적은 없다는 콤바이 세쿤도의 말이 새삼 가슴에 와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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