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상다반사

절대반지 이야기.

by 즐거움이 힘 2014. 10. 30.
반응형

나에겐 내가 무척이나 소중하게 생각하는 반지가 있다. 그 반지는 2007년 집사람과 잠시 떨어져 살게 되었을 때 집사람이 나에게 선물로 준 것이다. 이미 결혼 한지 10년 훨씬 넘은 때였지만, 주말 부부가 되어 있는 동안 커플링으로 서로를 그리워하자며 준 것이었다. 결혼 반지는 거추장스러워 잘 끼고 다니지 않았던 때라 흔쾌히 승낙하여 반가운 마음에 반지를 끼고 다녔다. 중년에 커플링을 낀다는 것은 나름 색다른 기분이기도 하였다. 그런데 그 반지를 몇 년 애지중지 끼고 다니다가 권투를 다시 하면서 어쩔 수 없이 그 반지 역시 장롱 속 결혼 반지 옆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런데 싱가포르에서 한국으로 돌아오기 며칠 전 우연히 그 반지를 보았다. 그리고 반가운 마음과 호기심에 반지를 끼워 보았다. 반지는 약간 찌그러져 있었지만 변함없이 잘 맞았다. 옛날 생각도 나고, 3개월 정도 한국에 또 혼자 있어야 하는 처지라 반지를 선물한 집사람 기분도 생각해서 반지를 낀 채로 며칠 남지 않은 싱가포르 생활을 하고, 한국에서도 예전과 같은 마음으로 반지를 끼고 있기로 했다.

  

그런데 사건은 반지를 끼고 며칠이 지난 어느 날 밤 슬그머니 일어났다. 잠을 자려고 누웠는데, 갑자기 손가락에 있던 반지가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한번 신경 쓰이기 시작한 반지는 나의 신경을 자꾸 곤두서게 했다. 그래서 나는 그 날 반지를 빼놓고 잠을 자기로 했다. 침대에 기대어 인터넷 고스톱을 즐기고 있는 아내 뒤편 침대에서 나는 반지 빼기를 시도했다.

그런데 며칠 전 끼어볼 때는 잘 나오고, 잘 들어가던 반지가 나오지를 않는 것이다. 이리저리 돌려보고, 몇 번을 시도해도 반지가 나오질 않았다. 그냥 자고 내일 아침에 다시 한 번 해보자는 마음으로 잠자리에 누웠지만, 마치 내 손가락에 수갑이 채워진 것처럼 신경이 쓰여 잠을 청할 수가 없었다. 결국, 나는 다시 일어나 욕실로 가 비누를 손가락 주위에 바르고, 반지 빼기를 시도했다. 하지만 반지는 손가락 마디까지는 나왔지만, 마디에 있는 주름을 넘지 못했다. 가끔 마디의 첫 번째 주름은 넘을 때도 있었지만, 연이어 있는 다음 주름들을 넘어가지 않았다. 마치 자동차 주차하듯 반지를 앞 뒤로 수 십 번 반복했지만, 반지는 뺄 수가 없었다.

그때 문득, 인터넷에서 보았던 실로 반지 빼는 방법이 생각났다. 그 방법은 반지와 손가락 사이에 실을 끼고, 손가락에 실은 감은 다음 실을 서서히 풀면 실이 반지를 밀어 내면서 반지를 빼는 원리이다. 나는 슬며시 베트남의 어느 호텔에서 가져 온 반짇고리에 있는 실을 뽑아 손가락에 감았다. 그리고 실을 풀었다. 그러나 실을 너무 느슨하게 매어서 그랬던지 실만 풀릴 뿐 반지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몇 번을 했음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손가락은 조금씩 아프기 시작했다. 급기야 고스톱에 열중하던 부인도 내가 안쓰러웠던지 합세를 했다. 인터넷에서 실로 반지 빼기에 대한 자세한 방법을 찾아보겠다며 나를 응원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후 공부를 하던 고3 딸도 합세를 했다.


  


그런데 딸이 말하길, 

 "나도 전에 그렇게 해봤는데 4시간 걸렸어. 그리고 손가락이 굉장히 아파 ."

 딸의 그 말에 나는 아연실색 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도 반지 빼기를 계속 시도해서 손가락이 아파 죽겠는데, 4시간이 걸리다니…….

참으로 당황스러웠다. 이 방법뿐이 없나? 생각하며, 조금 겁이 나기 시작했다.

그 순간 인터넷 검색을 하던 부인이 혼자 깔깔 되며 웃음을 터트렸다.

왜 웃냐?는 나의 말에 부인은,

"어느 여자 블로그인데, 이 여자는 빼는데, 24시간 걸렸데, 하하하. 그리고 이 손가락 사진 봐. 손가락에 멍이 퍼렇게 들었어. 하하하"

"슬픈데, 너무 웃겨. 하하하. 그래서 결국은 반지를 빼긴 했데, 하하하. 그래도 이 방법이 최고래. 하하하"

"당신은 실은 너무 약하게 묶었나 봐 더 세게 묶어 봐. 하하하"

웃는 부인이 얄밉기는 했지만 내가 생각해도 그 상황은 너무 우스웠다. 실로 반지를 빼기 위해 24시간이 걸렸다는 것도 웃겼고, 반지를 뺀 자리가 퍼렇게 멍들어 있는 것도 웃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방법이 최고라는 말은 슬펐다.

손가락은 아픈데 웃음은 나오고, 어쨌든 반지를 빼야겠다는 마음이 더욱 절실해졌다. 그래서 나는 마음을 굳게 먹고, 부인한테 실을 감아달라고 부탁을 했다. 그런데 실이 손가락을 한 바퀴 돌며 감길 때마다 나의 손가락은 처음엔 하얀색에서 점점 검은색으로 변해갔다. 실을 손가락에 감으니 손가락에 피가 통하지 않아 색깔이 변하는 것이다. 하지만 반지를 빼겠다는 일념하에 나는 참았다. 부인은 아랑곳하지 않고, 실을 감았고 급기야 나는 그만 감으라고 소리를 쳤다. 나의 호통에 부인은 실 감기를 중단하고, 실을 풀기로 했다.

이제 실을 풀면 반지는 손가락에서 나오는 것이다. 드디어 실을 풀기 시작하자 반지는 조금씩 앞으로 전진했다. 이제 곧 반지가 나올 듯했다. 하지만 그것은 내 생각일 뿐이었다. 반지는 또 다시 손가락 마디에 걸리고, 실만 풀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단단히 감긴 실은 마디에 걸린 반지와 마디 주름 사이의 거의 없는 틈으로 나오면서 손가락 피부에 생채기를 내면서 풀렸다. 나는 이러다가 내 손가락이 잘려나가겠구나 하는 생각까지했다. 아픔을 참고, 겨우 실을 풀고 나니, 반지는 마치 어느 산의 정상에 올라 쉬고 있는 등산객처럼, 약지의 마디 주름에 그대로 걸쳐져 있었고, 마디 아래쪽에는 누가봐도 반지를 꼈었구나! 알 수 있도록 반지 자국이 남았다. 계속된 시도로 손가락은 부어 처음보다 더 두꺼워졌고, 이제는 반지가 뒤로도 가지 않은 상황까지 오고 말았다. 하지만 약지를 마치 욕하는 모양새로 둘 수 없어, 아픔을 참고 반지를 뒤로 밀어 놓았다. 그렇지만 손가락의 고통은 처음보다 훨씬 심해졌다.

옆에서 슬퍼하다, 웃다가를 반복하던 부인은 나 보기가 안쓰러웠는지 급기야 나에게 반지를 자르자고 제안을 했다. 하지만 이 반지를 자르는 것은 지금 내가 손가락에서 느끼는 육체적 고통보다 더 큰 정신적 고통이라는 생각에 반대했다. 하지만 정신이 육체를 항상 지배하는 것은 아니다. 시간이 갈수록 부은 손가락에서 느껴지는 육체적 고통은 커졌다. 그래서 결국 나는 공구함에 있는 철사를 자르는 도구인 니빠를 꺼내와 반지를 자르기로 했다.


드디어 반지를 자르기 위해 반지의 제일 얇은 부분에 니빠를 가져갔다. 그리고 속으로 생각했다. 이렇게 반지로 인한 고통이 끝나는구나. 하지만 이것 또한 내 착각이었다. 잘 안 끊어질 줄 알았던 반지는 생각보다 잘 끊어졌다. 하지만 반지가 잘림과 동시에 반지의 끊어진 부분은 날카로운 상태가 되었고, 반지에 눌려 있던 살이 튕겨 나오면서 반지 끊어진 양 끝 부분이 나란히 손가락에 박히고 말았다. 아픔을 참고, 반지를 벌려 빼내자, 손가락에는 마치 뱀에게 물린 듯 뱀의 이빨 자국처럼 두 곳의 작은 핏방울이 맺혀 있었다. 어쨌든 이렇게 나는 절대반지(절대 빠지지 않는 반지)를 빼고 말았다. 


화장실 들어 갈 때와 나올 때가 다르다고 막상 반지를 자르고 난 후 잘려진 반지를 보니 가슴이 매우 아팠다. 시간이 지나면서 손가락의 육체적 고통은 점차 사라졌고, 육체적 고통이 사라진 것에 반비례로 반지를 선물했던 부인에게 미안한 정신적 고통이 커졌다.

하지만 오늘 반지를 끼었던 약지를 유심히 보니 그곳에 있던 반지는 잘려나갔지만, 손가락에는 반지 자국이 희미하게 남아있었다. 아마 약지에 있는 희미한 이 반지 자국은 앞으로 내 열 손가락에 어떤 반지가 끼워진다고 해도 내 마음속에서는 제일 빛나는 반지가 되지 않을까 생각되었다.



  

 

'일상다반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새벽 4시 그리고 오후 4시.  (0) 2014.11.13
풍경 그리고 일상  (0) 2014.11.02
첫 얼음이 얼다.  (0) 2014.10.28
이번엔 개 이야기 그리고...  (0) 2014.10.25
어느 식당의 고백  (0) 2014.09.28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