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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

새벽 4시 그리고 오후 4시.

by 즐거움이 힘 2014. 11.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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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뜨니 새벽 4시다. 너무 이르다는 생각에 다시 잠깐 눈을 붙인다. 하지만 곧 다시 눈이 떠진다. 아직 어두워 이부자리에 누운 채로 손을 더듬어 핸드폰의 시간을 확인하니, 그새 30분이나 지났다. 알람 맞춰 둔 시간보다는 30분 빠른 시간이지만 자리를 털고 일어난다. 창밖에는 아직 어둠이 가득하다. 그리고 찬 바람이 마당 잔디밭을 스치고 지나가며 소리를 낸다. 차 앞유리에 성에가 끼지 않았을까 현관문을 열고 나가보니 차가운 바람이 이번에는 내 볼을 날카롭게 스치고 지나간다. 다행히 차에는 성에가 끼지 않았다. 매일 성에가 끼더니 웬일로 성에가 끼지 않았을까하는 의문이 들긴 했지만, 어쨌든 다행이다. 생각한 것보다 날이 춥지는 않은듯했지만, 수돗가 대야의 물은 꽁꽁 얼었고, 늘 자기 집 밖에서 자던 누렁이도 자기 집 안에서 자다가 인기척 소리에 꼬리를 흔들며, 슬그머니 나온다. 날이 춥긴 추운가 보다 십 몇 년 만에 입시 한파라고 하더니 하필 오늘이라니......






오늘은 딸이 수능 시험을 보는 날이다. 외국에서 고등학교 생활을 보내고, 한국 대학을 가기 위해서 수능을 보러 한국에 왔다. 다니던 학교는 한국의 입시 제도에 맞게 수업이 진행되지 않았고, 학교 학생 중 혼자만 수능을 보기 때문에 그동안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힘들게 공부를 해온 딸이다. 한 달 전에 한국에 들어왔으나 한국에 집이 없어 이곳저곳을 옮겨 다니며 수시 면접과 수능 준비를 해왔다. 다행히 고모들과 친척들의 도움으로 어렵지 않게 생활을 해왔지만, 엄마, 아빠가 곁에 없는 상태에서, 이리저리 떠돌며 생활을 하며 공부를 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을 터인데, 대견하고 미안하다.


수능 날 도시락은 어떻게 해줄까라는 나의 물음에 김치볶음밥을 해달란다. 딸은 수능 시험을 외할머니가 살고 계시는 원주에서 치르기에 시험 전날은 외할머니댁에서 자야 한다. 그런데 몸 불편하신 할머니에게 도시락까지 부탁하기에는 염치가 없었다. 그리고 딸은 내가 해주는 아빠표 김치볶음밥을 제일 좋아할 것이라는 나의 확신하에 내가 해주겠노라고 했다. 딸도 흔쾌히 찬성했다.



그래서 나는 새벽 4시 반에 일어나 지금 수능 도시락을 준비하는 중이다. 

밥은 어제 미리 해두었다. 볶음밥을 하기에는 방금 한 밥보다는 약간 식은 고슬고슬한 밥이 더 맛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제 김치를 선택해야 한다. 며칠 전 새로 한 김장 김치, 그동안 먹고 있던 약간은 신 김치. 약간은 신 김치가 김치 볶음밥에 더 적격이란 생각에 신 김치통을 꺼내 김치를 썬다. 밖 날씨만큼이나 김치도 손이 시릴 정도로 차갑다. 밑동 쪽보다는 위쪽을 좋아하는 딸을 위하여 윗 쪽의 쭈글쭈글한 부분을 잘게 설어 프라이팬에 볶는다. 거기에 참지를 넣어 함께 볶다가 이제 밥을 볶는다. 후라이팬이 생각보다 작아 밥이 고슬고슬해 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오늘은 그 어느 때보다 정성스럽게 밥을 볶는다. 이윽고 김치 볶음밥은 완성되었다. 국을 준비하기 위해 올려 놓은 멸치, 다시마 육수도 이제 다 된 듯하다. 그곳에 잘게 썬 파와 오뎅 그리고 계란을 풀어 넣으면 오뎅국이 완성된다. 오뎅 국이 완성되는 동안 김치 볶음밥에 올려 먹을 계란 후란이도 한다. 음식을 하다 보니 알람이 울린다. 5시다.




이제 음식은 다 되었다. 밀폐용기에 볶음밥을 담는다. 혹시나 그 위에 계란 후라이를 담을 경우 눅눅해 질까 봐 한쪽 구석에 후라이를 담는다. 그리고 이제 밀폐 용기를 보온 가방에 넣는다. 국은 보온 통에 담고, 도시락 김과 물 한 통, 그리고 수저를 챙긴다. 이제 완성이다. 설거지와 뒷정리를 하고 보니 5시 40분이다.  


이제 나도 준비해야 할 시간이다. 차에 시동을 켜고, 나도 준비를 한다. 정각 6시, 혹시라도 도시락이 식을까 패딩 잠바 속에 도시락을 놓고 딸이 있는 원주로 향한다. 이제 할머니 댁에 도착해서 딸에게 아침밥을 먹이고, 시험장에 데려다 줘야 한다. 오늘 내가 첫잠에서 깼던 시간의 12시간 후, 오후 4시면 딸은 그동안 본인이 준비했던 것들이 결과물이 되어 나온다. 딸이 노력했던 것보다 조금 더 많이, 그리고 딸이 바라는 것보다 더 좋은 결과물이 나왔으면 좋겠다.




원주로 향하는 자동차 전용도로에서 나는 엊그제 딸이 나에게 했던 말을 되새기면서 혼자 웃음 가득한 채, 딸에게 달려간다.


"아빠!, 대학 면접에서는 왜? 롤 모델을 안 물어보지? 난 롤 모델을 물어보면 아빠라고 하려고 했는데, 어디에서도 안 물어보네, 다른 대학에서 물어보면 꼭! 아빠라고 할 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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