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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

마른 논에 물 들어가는 것과.......

by 즐거움이 힘 2014. 12.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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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먹어라!"

"아니, 많이 먹었어요! 이제 그만 좀 주세요." 

"마른 논에 물 들어가는 것하고, 내 새끼 입에 밥 들어가는 것이 제일 좋은 거여~~"


며칠 전 어머니 생신 날 어머니와 나의 대화이다. 매번 그렇듯이 어머니는 나에게 더 먹으라며 음식을 밀어주시고, 나는 짜증 섞인 목소리로 거절한다. 이것이 한 두 번이 아니다. 자꾸 연세 들어가시는 어머니에게 더는  그러지 말아야지 하지만 그게 쉽게 되지 않는다.


내일이면 나는 싱가포르로 돌아간다. 그래 봤자 이번에는 약 세 달 정도 싱가포르에 머물고, 부인과 딸도 함께 한국으로 완전히 귀국하게 된다. 3년 만에 가족이 다시 모여 살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내가 이번에 싱가포르로 떠나면 한국 우리 집에는 아들만 혼자 있게 된다. 지금 상근 예비역으로 근무하고 있는 아들이다. 차라리 현역병이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기는 하지만 그건 내 생각일 뿐이다. 아들은 입대하면서부터 지금까지는 외할머니댁에 있었으나 본인이 불편해하고, 아프신 외할머니도 버거워 하시는 것 같아 지난달 말, 싱가포르 가기 전에 살던 집으로 다시 들어와 살고 있다. 이제 내가 싱가포르로 돌아가니 아들 혼자 커다란 아파트에서 생활하게 되는 것이다.


앞으로 혼자 일어나서, 혼자 밥 해먹고, 혼자 설거지하고, 혼자 빨래하고 해야하는 것이다. 처음엔, 다 큰 놈이 혼자 알아서 하겠지 했는데, 막상 돌아가는 날이 며칠 남지 않으니 맘이 무거워진다. 그리고 새로 이사한 집이다 보니 이것저것 부족한 것도 많다. 그러니 맘에 걸리는 것이 많은 것이 당연한지도 모른다.


혹시 늦게 일어나서 지각하면 어쩌나? 아침밥은 잘 먹고 다닐까? 빨래는 어쩌지? 청소는 잘 하려나? 아주 수 만 가지 잡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다 컸으니 알아서 할꺼야"라고 사람들은 쉽게 말하지만 막상 내 마음은 그렇지 않다. 자꾸 맘에 걸린다.


얼마전 집사람과 통화 중 누구에게 무엇을 해 줄 때 내 마음이 편한 대로 하는 것이 제일이고,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면 된다라는 말을 하며 둘 사이 의견 일치를 봤었다. 그래서 난 아들에게도 내가 마음 편한 쪽으로 그리고 할 수 있는 만큼 하기로 했다.


그래서 쌀독에 쌀을 채워 놓고, 혹시 바쁘면 못 해먹을지도 모르니 즉석밥도 몇 개 사다 놓고, 

아직 정수기를 설치하지 못했으니 혼자 충분히 먹을 수 있는 양의 생수도 사다 놓고, 

아들이 좋아하는 마늘 초조림이랑, 김이랑, 스팸 그리고 참치 몇 가지 그리고 밑반찬 몇 가지도 채워 놓고,

아침에 국 없이 잘 먹지 못하는 아들을 위해 횡성 축협에서 산 냉장 횡성 곰탕 두 종류와

곰탕엔 파가 있어야 하니 파도 좀 썰어 담아 놓고, 마늘도 좀 쪄 놓고,

마지막으로 즉석 카레도 사다놓으니 내 마음이 조금 가벼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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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조림

오뎅 볶음과 즉석 카레

소고기 국 3인분

냉동 횡성 한우 곰탕



하지만 너무 인스턴트가 많은 것 같아 

아들이 좋아하는 계란과 돼지 고기를 사다가 장조림을 해서 냉장고에 채워 두고,

아들이 좋아하는 국밥집에 둘러 국 3인분을 사다 냉장고에 넣어 두고, 

마지막으로 외할머니댁에서 밑반찬 몇 가지 더 얻어다 냉장고에 채워 놓고, 

아들에게 정 밥 해먹을 수 없으면 외할머니댁에 가서 먹으라는 최후의 방법까지 알려주고 나니 이제 진짜로 마음이 놓인다.


그리고 어느 순간 나를 돌아보니 

내가 집에 갈 때마다 이것 먹어라, 저것 먹어라 이거 가지고 가라, 저거 가지고 가라 하시던 어머니의 모습을 내가 내 아들에게 하고 있었다.


식탁을 아직 마련하지 못한 이유로 아파트 작은 홈바에서 아들과 얼굴을 맞대고, 식사를 하다 보면 어머니가 늘 말씀하시던 "마른 논에 물 들어 가는 것하고, 내 새끼 입에 밥 들어가는 것이 제일 좋다"하는 말이 끼니때마다 가슴에 와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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