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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

아버지의 아버지

by 즐거움이 힘 2015. 3.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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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떴다. 시계를 보니 새벽 6시 30분이다. 평상시에 일어나는 시간보다 30분 늦었다. 어제 서울에서 30년 만에 본 고등학교 동창과 소주 한잔하고, 마지막 기차를 타고 집에 왔더니 피곤했나 보다. 그런데 거실에 작은 불이 아직 켜 있다. 집에 아직 올 사람이 있을 때 켜 놓는 전등이다. 그러니 누군가 안 들어온 것이다. 아니면 늦게 들어온 사람이 불을 안 껐을 것이다. 그런데 요즘 이 집에는 나와 아들만이 살고 있다. 올해 대학에 들어간 딸은 서울 기숙사에 있고, 집사람은 출장 아닌 출장으로 주말에만 집에 올 수 있다. 그렇다면 아들이다. 걱정되는 마음에 일어나 아들 방을 열어보니 아들이 아직 들어오지 않았다. 이게 무슨 일인가?

 

 

이번엔 내 핸드폰을 확인한다. 새벽 2시 56분에 카카오톡 문자가 와 있다.

"아빠, 나 오늘 좀 늦게 들어갈게"라는 아들의 문자다. 조금은 안심이 된다. 그런데 괘씸하다. 새벽 3시가 다 된 시간에 좀 늦게 들어간다니?

 

내가 잠자리에 든 시간이 1시 30분 경이었으니 이 문자는 내가 술 기운에 잠이 푹 든 뒤에 왔을 터이다. 집으로 오는 기차에서 통화할 때 상근 예비역으로 근무 중인 아들은 내게 내일은 부대 포상으로 쉬는 날이라 출근을 안 한다고 했다. 오늘 좀 놀고 들어갈테니 먼저 주무시라고 말했었다. 아마 시간이 더 늦을 것 같으니 나에게 문자를 했던 모양이다. 만일 내가 잠자리에 들기 전이라면 몇 시까지 들어오라고 호통을 치고, 적정한 시간을 정했을 터인데 그러지 못한 것이다. 그리고 지금은 늦은게 아니라 새로운 아침인데........

 

'친구 집에서 잤겠지'라는 생각과 '친구 집에서 자면 말을 해야지'하는 생각이 동시에 들면서 조금씩 화가 나기 시작한다. 재빨리 전화를 집어 전화를 걸었다. '두 세 번 전화를 해야 될거야' 생각했는데, 아들 전화의 컬러링이 한 소절도 끝나기 전에 아들이 전화를 받으며 "여보세요"라고 한다.

 

"너! 어디야?" 

"지금 집에 들어갈려고....."

친구집이 아니라 어딘가 밖이라는 소리다. 나는 잠깐 생각한다. 그리고 낮은 소리를 말한다.

"빨리 들어 와!"

"알았어요."

 

어제 먹은 술 기운에 좀 더 자고 싶었는데, 얼굴에 차가운 냉수를 부은 것처럼 잠이 깬다.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아들이 아무 연락없이 늦게 아니 아침까지 집에 안 들어온 것이다.

'이걸 어째야 하나?'

'들어오면 뭐라고 해야 하나?'

난 이런 순간이 너무 힘들다. 그것은 내가 화가 나서가 아니다. 이유는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힘들다.

 

 

 

 

 

나의 아버지는 내가 고등학교 1학년 때, 아주 일찍 세상을 뜨셨다. 지금 내 나이보다도 두 살만 더 사시고 돌아가신 것이다. 중학교 때부터 투병 생활을 하시다가 내가 학교 간 사이에 막내 아들 얼굴도 못 보신 채 돌아가셨다. 소식을 듣고 급히 학교에서 돌아오면서 보았던 집 대문에 걸린 노란 근조등은 아직도 내 머리 깊숙이 트라우마처럼 남아 있다.

 

초등학교 시절 어머니와 동네 유일 슈퍼마켓을 운영하던 아버지는 자식 다섯 중의 막내 아들인 나를 무척 귀여워하고 예뻐하셨다.

당시 어린이 드라마 '호랑이선생님'의 주인공 손창민이 들고 있던 워키토키를 사 달라고 때쓰는 막내 아들의 종아리를 빗자루로 멍들도록 때리기도 하셨고,

매를 맞고 우는 아들이 안 쓰러 아들의 손을 잡고 시내에 나가 워키토키를 사 들려 주기도 하였으며, 

야구를 좋아하던 막내를 위해 대학생 형을 시켜 동대문에서 야구방망이와 글러브를 사다 주시기도 했었고,

축구를 좋아하는 아들을 위해 학급에 축구공을 기증해 주시기도 하였고,

한 여름에 보이스카웃 야영을 하는 아들과 친구들 그리고 선생님들을 위해 수박을 짐차라 불리는 자전거에 실고 야영장까지 오시기도 하였었다.

 

그런데 나의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여기까지이다.

 

아버지가 투병을 시작한 중학교 시절 그리고 돌아가신 고등학교 시절 이후 아버지와 나와의 관계는 당연하게도 기억에 없었고, 나는 사춘기 이후 아버지라는 존재가 어떤 모습인지 학습되지 않았다. 단지 아프신 아버지만 기억할 뿐.

 

나는 이제는 성인이 된 아들을 보면 내가 무엇을 어찌해야 할지 몰라서 당황을 할 때가 종종 있다. 아들이 중, 고등학교 시절에는 아직은 어른이 보호해야 할 미성년자이기에 부모가 보호해야 한다는 측면에서 많은 것을 지시하고, 간섭하고, 때론 화도 내고, 때론 칭찬도 하면서 아들을 키울 수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나의 아들이 성인이 되었다. 성인 된 아들이 무언가를 하려고 할 때면 내가 저 나이 때 나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생각하며 아들에게 그 시절의 나를 대입해 보며 아들의 생각을 이해하려고 한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에 일어난다. 나의 아버지라면 성인이 된 아들에게 어떻게 할까라고 생각하면서 지금 나에게 나의 아버지를 대입하려고 하지만 대입이 되지 않는다. 성인이 된 나에게 대입할 수 있는 아버지의 기억이 없기 때문이다. 대입이 되어야 내가 싫었던 것은 하지 않고, 내가 좋았던 것은 할텐데 그게 되지 않는다.

 

아들이 고등학교 졸업 했을 때 식구들과 저녁 식사를 하면서 아들에게 말했었다.

 

"아들아! 아빠는 아빠의 아빠가 일찍 돌아가셔서 성인이 된 아들에게 아빠라는 사람들이 어떻게 해야할 지 잘 모른다. 그러니 혹시 앞으로 아빠가 너에게 하는 행동과 말 중에 거슬리는게 있다면 언제든지 말해라. 언제든지 다시 생각해 보마. 그것은 아빠의 교육 방식이 아니라 몰라서 그렇게 하는 것일테니까. 아빠가 조금은 미숙해도 이해해라."

 

 

 

 

 

시간이 30여 분이 더 되었는데도 아직 아들이 안 들어온다.

다시 전화를 했다. 이제 택시 탄다고 한다.

얼마 안 지나 현관문 비밀번호를 누르는 소리가 자그마지만 정확하게 들린다.

'화를 내야 하나?'

'아니면 그냥 모르척해야 하나?'

'거실에 나가 있어야 하나?'

'안방에 있어야 하나?'

 

아직 침대에 비스듬히 누운 상태로 있는데 아들이 안방으로 들어온다.

 

"저 왔어요"

"대체 뭐 하는거야? 뭐하는데 이렇게 늦어?" 

화는 묻어있지만 큰 소리 안 나게 아들을 바라보며 물었다.

"친구들이랑 술 마시고, 노래방 가고 그러다보니 시간가는 줄 몰랐어요"

 

말을 하는 동안 아들의 얼굴을 살펴보니, 얼굴에는 피곤함이 그리고 눈동자에는 술기운 가득 묻어 있는 듯하다.

 

그리고 저 나이 때 내 모습이 보인다. 친구들과 삼치 안주 하나와 얼마 만큼인지 모르는 술을 마신 후, 술 집을 나서면 거리는 벌써 환해져 있었고, 버스 정류장 앞에는 청소부 아저씨가 거리를 청소함과 동시에 모아진 쓰레기를 리어카에 싣고 있었으며, 등교하는 고등학생들은 술 취해 떠들며 자취방으로 향하는 대학생 형들을 한심하듯 그러나 조금은 부러운듯 쳐다 보던 그 시절이.

 

"알았어. 들어가 자라!"

 

만일 내 아버지라면 이 순간에 어떻게 하셨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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