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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

[그냥 떠난 여행](라오스 여행) - 12일 차에 생긴 사고 - 이제는 말할 수 있다.

by 즐거움이 힘 2015. 1.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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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든 국외든 여행 시 가장 중요한 한 것은 안전이다. 이것은 내가 항상 주장하는 것이고, 가능하면 안전한 여행을 하려고 한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사고가 발생하는 경우가 있다. 무엇이 문제인지 모른 채. 


묻지마 여행 12일 차, 1월 9일 태어나 처음으로 오토바이(스쿠터)를 빌려 부인과 함께 오빠!달려!를 하던 그날 그 사고는 벌어지고 말았다. 방비엔의 명소 블루라군을 구경하고, 숙소 주위에서 휴식을 취한 후 우리는 방비엥 산악의 동굴 탐험을 하기로 했다. 라오스 방비엥은 석회암 동굴이 이곳 저곳에 널려 있는 곳이고, 튜핑을 하면서 그러한 동굴 탐험을 하기로 유명한 곳이기도하다. 그리고 그 유명한 블루라군도 그러한 현상으로 생겨난  관광지이다.

동굴 입구 모습


그 날 우리는 날씨도 춥고, 고씨동굴이나 말레이시아 동굴 탐험을 해 본 경험이 있기에 가까운 곳의 작은 동굴 탐험을 하고 마무리 짓기로 했다. 그리하여 현지인들에게 물어 물어 작고, 아름답다는 주위의 동굴에 가기로 했다. 숙소에서 스쿠터로 10분이면 갈 수 있는 곳이러서 가기에 적당한 곳이었다. 현지인이 추천해 준 동굴을 찾아가니 인적은 없었고, 관리 혼자만이 동굴 입구를 지키고 있었다. 관리인의 임무는 관리라기 보다는 입장료를 받는 것과 장비 임대가 가장 큰 임무인 듯했다. 우리는 그가 원하는 입장료 만 킵(1,500원)을 지불하고, 또 그가 요구하는 머리에 쓰는 오 천 킵짜리 렌턴도 대여를 하여 동굴로 발길을 옮겼다.




빌린 렌턴

 

동굴은 입구에서 100 m 정도 떨어진 곳에 있었다. 우리는 동굴 앞의 맑은 물에 잠시 손을 씻고, 떨리는 마음으로 동굴로 향하는 계단을 올라렀다. 돌 계단을 올라서면 나타나는 동굴 입구는 아주 작았고, 머리와 몸을 숙이고 들어가야만 했다. 입장객은 우리 둘뿐이라 나는 앞장을 섰고, 나의 휴대폰 렌턴과 모자형 랜턴을 모두 이용하여 동굴 입구를 비치면서 동굴로 들어섰다. 입구에 들어 섰지만 동굴안은 아무것도 보지지 않는 어둠뿐이었다.


그런데 그때 나의 뒷 쪽에서 집사람의 외마디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뒤돌아 보니 집사람은 머리를 부여잡고 있었다. 집사람이 입구로 올라오는 길의 돌 계단을 힘차게 딛으며, 상체를 들다가 머리의 정수리와 이마 사이를 입구 천장의 바위에 부딪힌 것이다. 잠시 동안 머리를 부여 잡고 있는 집사람은 도저히 안되겠다며 되돌아가자고 했고, 나는 집사람과 함께 동굴 밖으로 나왔다. 



동굴 앞 개울



먼저 동굴 밖으로 나와 아까 손을 씻던 곳에 앉아 통증을 참고 있던 집사람 머리를 보니, 머리에서 귀 옆으로 굵은 핏방울이 떨어지고 있었고, 집사람은 고통과 떨어지는 핏방울에 놀라 얼굴을 찡그리며 울먹이고 있었다. 나도 놀란 가슴에 지혈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찾았고, 다행히 여행 시 항상 휴대해 다니는 손수건 크기 스포츠 수건이 있어 그것으로 집사람의 머리를 한참 동안 지혈을 하니 피는 곧 멈췄다. 상처를 보기 위해 수건을 걷으니 수건은 이미 피로 흥건히 젖어 있었고, 상처 부분도 피와 머리가 엉켜 알아볼 수가 없었다. 나는 고통에 괴로워하는 부인을 안정 시킨 후 왔던 길로 되돌아 갔다.


집사람은 한 손으로 머리를 수건으로 감싸고, 우리는 빠른 걸음으로 스쿠터를 세워 놓은 관리인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여전히 관리인은 혼자 있었고, 관리인에게 자초지종을 얘기하니 단지 걱정스럽다는 표정만 짓으며 우리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빨리 시내 병원을 가는 것이 최선이라 판단한 우리는 타고 온 스쿠터 타고, 시내 병원으로 향했다. 나는 내가 스쿠터로 낼 수 있는 최고의 속도인 시속 30KM를 넘나 드는 속도로 먼지를 휘날리며 달렸다.


방비엥 병원


지도에 표시되어 있는 시내 중심 병원에 도착하니 4시까지만 근무하는 라오스의 다른 관공서처럼 병원도 이미 업무가 종료 된 상태이었다. 하지만 다행히 응급실이 열려 있었다. 응급실 담당 직원에게 짧은 영어와 손짓 발짓으로 상황을 설명하니 상처를 본 후 응급실 안으로 우리를 안내 해주었다. 그리고 응급실의 의료진이 상처를 자세히 보더니 상처가 깊어 2바늘 정도 봉합을 해야할 것 같다며 나에게 상처를 보여주며, 설명과 동시에 소독을 하기 시작했다. 


낯선 곳에서 응급실 침대에 누워 있던 집사람은 잔뜩 겁에 질려 있었고, 나는 상처를 잘 봉합해달라고 부탁하고, 이리 저리 수속 절차를 위해 다른 직원의 안내를 받으며 다녀야만 했다. 모든 수속을 마치고, 응급실에 들어가니 처음 우리를 상담했던 의사인 듯한 젊은 여자 의료진이 집사람의 손을 잡고 집 사람을 안정시키며 있었다. 그리고 집사람의 머리 맡의 다른 의료진은 머리의 상처를 봉합하고 있었다. 머리를 꼬메고, 상처를 치료하는 시간은 불과 20여 분이고, 2바늘뿐이었지만 나와 집사람에게는 마치 2시간, 20 바늘 이상의 봉합 시간이었다. 그렇게 상처 치료는 친절한 라오스 병원의 여러 의료진 덕분에 2만 원 정도의 작은 돈으로 잘 마무리할 수 있었다.



 실밥 제거 후 상처 확인 하기 위해 찍은 사진



하지만  우리는 더 이상 기쁜 마음으로 여행을 즐길 수가 없었다.  그리고 더 큰 문제는 일주일 후에 봉합한 상처의 실밥을 제거해야하는 상황이 되었다. 이틀 후에 이곳을 떠나 루앙파르방을 거쳐, 태국 치안마이로 떠나야 하는 상황인데, 또 다시 낯 설은 나라, 낯 설은 병원, 낯 설은 의료진에게 이 모든 것을 설명하고 진료를 받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무작정 한국으로 돌아 갈수도 없고, 여행을 중단하기도 애매한 상황이었다. 우리는 숙고 끝에 실밥은 뽑는 기간까지 라오스 루앙프라방에 머물고, 그곳에서 실밥을 제거하기로 했다. 어쨌든 한 번 겪은 라오스 병원이니 그리 어려울 것 같지는 않았다. 그리고 방비엥 의료진들이 그 곳에는 병원이 많다고 했다.



머리를 보호하라!!


그리하여 우리는 방비엥에서 즐겨야 할 모든 엑티비티한 여행은 취소하고, 그저 거리를 거닐며, 거리와 사람 그리고 도시를 즐겻다.  그리고 며 칠 후 라오스의 마지막 행선지 그리고 실밥을 제거해야 할 루앙프라방에 도착했다. 루앙프라방에서 우리의 가장 큰 목표는 여행이 아니라 상처의 실밥을 제거하는 것이 되고 말았다. 도착한 날부터 우리의 눈은 매의 눈처럼 무섭게 병원을 찾았고, 어디가서나 누구에게나 제일 먼저 집사람의 머리를 보여주며 치료할 수 있는 병원이 어디있냐고 물었다. 결국, 루앙프라방을 떠나기 전 날, 사고 난 지 일주일 째 되는 날, 실밥을 뽑을 수 있는 클리닉을  찾았고, 그곳에서 실밥을 제거했다.(병원 찾는 일이 뭐가 어려웠을까 생각되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라오스 일반 병원은 오후 4시 이후에 연다. 그리고 평상 시에는 교외에 있는 대형 병원으로 가야한다.) 이렇게 우리의 작지만 끔직한 사고는 마무리 되었다.


실밥은 뽑은 후 기쁜 마음에 클리닉 앞에서 기념 촬영 - 창피해서 얼굴은 모자이크 처리



지금 나는 치앙마이의 숙소에서 오랜만에 평화로운 마음으로 이 글을 쓰고 있다. 원래 이 사실은 여행이 모두 끝난 후 쓰려고 했다. 집에 있는 아이들과 양가 부모 형제들이 혹시나 걱정할 것 같아 마무리 된 후 추억처럼 웃으며 얘기하려 했다. 그리고 오늘 아침, 딸과 아들에게만 웃으며 사실을 얘기했다. 그런데 오늘 한국의 지인으로부터 카톡이 왔다. 집사람 괜찮냐는 안부 메세지였다. 혹시 아이들한테 들었나 했더니 그게 아니었다. 집사람이 며 칠 전 카톡 중 싱가포르에 있는 지인에게 다친 사실을 얘기했는데, 그 소식이 한국에 있는 여러 지인을 거쳐 친척에게까지 이미 퍼진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오늘 난 엠바고(?) 파기를 선언하고, 우리를 알고 있는 지인들에게 이제 모두 해결되었으니 걱정하지 말라는 의미로 이글을 급히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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