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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여행

[스리랑카 여행 9 - 5일 차]갈레(Galle) or 골 여행

by 즐거움이 힘 2014. 8.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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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을 먹은 후 당일 치기로,

스리랑카의 오래된 도시이자 스리랑카에서 가장 많이 알려진 듯한 도시, 갈레(Galle)를 다녀오기로 했다. 일부 사람들은 골(Galle)이라고 부르기도 한다갈레에서 숙소를 잡고, 다음 날 콜롬보로 이동할 수 도 있었지만 이곳 센트럴 비치 숙소가 맘에 들어 이곳에 하루 더 머물기로 했다. 숙소 앞 버스정류소에서 버스를 타면 갈 수가 있다고 하여 버스를 타고 가기로 하였고, 인도 총각은 스쿠터를 렌트하여 다녀오기로 했다.



 버스를 타고 가는 내내 버스는 해안선을 타고 달렸다. 마치 동해안의 7번 국도를 달리는 기분이었다. 가끔 버스 밖으로 보이는 풍경에는 외나무 다리 낚시 불리는 스리랑카 전통 낚시용 낚시대가 해변에 설치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요즘은 이 방식으로 낚시하지 않고, 관광객이 원하면 사진을 찍기위해 포즈를 잡아주고, 일정 비용을 받는다고 한다. 대한항공 광고에 나온 후 많은 사람들의 관심꺼리 중에 하나가 되었다.



약 1시간 정도 걸려 갈레에 도착했다. 갈레역과 터미널이 보였다. 둘은 육교로 연결되어 있는 것 같았다. 콜롬보에서 기차를 타고 여행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하며, 해안선을 따라 달리는 기차에서 보는 경치가 일품이라고 한다.



터미널에 도착하여 어디를 가야하나? 두리번 걸리고 있는데, 저 멀리 성곽이 보였다. 일단 성곽으로 가보기로 했다. 성곽으로 가기위해 가다보니 성곽으로 들어가는 조그마한 동굴형 입구가 있었다. 그곳으로 수 많은 차와 사람이 드나들고 있었다. 입구를 들어서니 이곳은 저 밖과 다른 모양의 건물들과 다른 형태의 도시가 존재하고 있었다.



갈레를 안내하는 사무실 옆을 거쳐 성곽으로 올라갔다.


성곽 위에는 아주 커다란 오래 된 시계탑이 서 있었다. 마치 성곽 위에 서 호령하는 장군의 모습같았다. 성곽에 올라 보니 갈레 마을의 모습의 마치 미니어처로 만든 마을 같은 느낌이었다.



성곽 주위엔 많은 외국인과 스리랑카인들 있었다. 외국인들은 여행을 온 듯했고, 의외로 많은 스리랑카인들도 관광으로 온 듯 했다. 그리고 이곳은 주변에 사는 스리랑카 연인들과 젊은이들의 만남의 장소로 이용하는 듯 했다. 그리고 약간 불량끼있는 일부 젊은이들의 모임 장소같기도 했다. 하지만 여행객들에게 위협을 가하거나 해를 끼치지 않는 듯싶었다. 하지만 약간 겁은 났다.



성곽에는 지금도 운영되고 있는 듯한 군부대가 있었다. 대항해 시대 이후 이곳 갈레포트는 서구 열강들이 스리랑카를 다른 나라에게 뺏기지 않도록 지키는 최전방의 보루였다고 한다.


산책하듯이 성곽을 둘러보며 걷다보니,  저 멀리 낯 익은 사람이 눈에 보였다. 스쿠터로 출발했던 인도 총각이다. 우리보다 먼저 이곳에 도착했나 보다. 가볍게 인사를 하고 저녁에 숙소에서 맥주를 한잔 하기로 했다. 아마도 오늘 밤이 인도 총각과 마지막 밤이 될 듯싶었다. 인도 총각은 내일 오후 비행기로 몰디브로 간다고 했다.



성곽을 둘러본 후 마을로 들어가 보기로 했다. 갈레는 성곽과 바다로 둘러 싼 작은 마을이다. 


스리랑카인들이 아닌 강대국들에 의해 지어진 서구식 건물들이 주로 있다. 지금은 주로 스리랑카인들이 살고 있는 듯했고, 관광지로 변모했지만 당시 이곳은 이곳을 지배하던 서양 열강들의 지배층과  일부 스리랑카인만이 모여살던 공간이었던 것 같다.



마을은 네모 반듯한 모습으로 길이 나 있었고, 모두 서구식 건물들이었다. 그리고 비록 낡았지만, 무척이나 깨끗하고, 정돈이 잘 되어 있다는 느낌을 주기 충분했다.



예전에는 어떠했는지 모르지만 지금은 대부분 집들이 보석 가게, 식당, 카페, 게스트 하우스로 변해있었다. 그런데 느낌이 내 어릴적 살던 동네와 비슷했다. 예전에는 큰 길이었을 골목길과 골목 여기저기에 있는 작은 가게들. 꼭 여기 저기 아이들이 나와서 구슬치기와 술래잡기를 했을 듯 싶었다. 그런데 지금은 어린 아이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거리 곳곳에는 툭툭들이 혹시 시내로 나갈 손님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일부 건물들은 앞으로 올 손님들을 위해 건물 리모델링을 하고 있었다. 앞으로 이곳은 더 많은 사람들로 붐비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을을 둘러보고 다시 성곽 밖의 바다를 둘러보기 위해 바다 쪽으로 향하니 많이 낯 익은 듯한 모습의 사람이 우리에게 말을 걸었다. 내가 자기에게 돈을 내면 자기가 바다로 점프를 할테니, 사진을 찍으라고 한다.  여행 준비 전 텔레비젼 프로그램에서 봤던 그 사람이었다. 푯말이라도 하나 걸어놓고 영업을 하면 모를까 사전 지식이 없는 사람이 저들의 말만 믿고, 돈을 내지는 않을 듯싶었다. 그들은 여러 여행객에게 시도를 했지만 결국 나는 저들이 점프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



해안선을 따라 내려가지 저 멀리 부서지는 파도 옆 바위에 앉아있는 젊은이들이 보였다. 위험하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그렇다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 옆 해변에서는 젊은이들이 수영을 하다가 내가 관심을 보이자 들어와서 같이 수영을 하자고 소리쳤다. 하지만 자신이 없었다.


성곽 끝 쪽으로 다가가니 커다란 등대가 바다를 응시하며 서 있었다. 아마도 입구에 있던 시계탑과 이 등대는 근대 스리랑카의 슬픔과 기쁨 그리고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성곽이 끝나는 곳 즈음에 가니 많은 사람들이 해수욕을 즐기고 있었다. 수 많은 현지인들이 수영을 즐기고 있는 것이었다. 이곳은 아마도 현지인들이 수영을 즐기는 곳인듯 싶었다. 주로 아이들과 남자들이 수영을 즐기고 있었고, 가끔 수영을 하는 여성들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들은 살이 들어나는 수영복이 아닌 평상옷을 입고 수영을 즐기고 있었다.




갈레포트(Galle Port)는 마치 미니어처 같은 느낌이었다. 성곽 밖의 현대화되어 가고, 약간은 무질서해 보이는 도시와는 동떨어진 채로,  성곽과 바다로 둘러싼 특별한 마을이었다. 해 질 녁 이곳에선 현지인들이 모여 축구, 크로켓, 연 날리기 등을 하며 여가를 즐기는 것을 볼 수 있다. 바다와 성곽과 마을 그리고 사람들의 노는 모습은 마치 한 폭의 그림같았다.



일몰이 이쁘다하여 일몰을 보고 미리사로 출발하려 했으나 날이 흐려 포기하고 우리는 성곽 밖으로 나왔다.


마을을 지나 해변가를 돌다보니 작은 배들이 있는 곳에 사람들이 소리치는 모습이 보였다. 가까히 다가가니 그곳에는 고기를 실고 들어온 작은 어선들이 생선들을 팔고 있었다. 자신들이 잡아 온 생선들을 직접 소비자에게 직접 파는 곳인 듯했다. 지나가는 나와 현지인들에게 스몰 튜터 라고 외치며 사라고 했으나, 생선은 참치라기 보다는 정어리 같았다. 바다 저 편에 서서히 어둠은 깔려오고 있었고, 일부 스리랑카인들은 이곳에서 오늘 저녁꺼리로 먹을 생선을 사 집으로 바쁜 발걸음 옮기고 있었다. 



이렇게 우리는 갈레 여행을 마치고, 다시 미리사로 이동을 했다.



사족!


갈레포트를 둘러보는 동안 차를 마시기 위해 게스트 하우스와 레스토랑을 겸하는 가게에 둘러 차를 한 잔 마셨다.

이곳 사장님. 건물은 부인 것이라고 한다. 장모님한테 부인이 물려 받은 것이라고.


차를 마시면서 사장인 할아버지와 얘기를 나누었는데, 150년 된 집이여, 식당 안쪽에 게스트 하우스도 같이 운영하였다. 가격은 보통 2,500루피 정도 한다고 한다. 그리 비싼 곳은 아니다. 


식당 내부의 게스트 하우스


내부에는 예쁜 정원도 있었다. 비록 실내는 찍지 못했지만 나름 괜찮은 숙소 같았다. 미리사에 예약을 하지 않고, 짐을 가지고 왔다면 이곳에 숙박을 해도 좋았 듯싶었다.

게스트 하우스 정원


아래는 내가 받은 명함이다. 갈레에 묵으려면 갈레포트 안 마을에서 묵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마치 안동 화회마을에서 하루를 묵 듯이.


명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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