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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

딸의 티셔츠와 노무현 대통령

by 즐거움이 힘 2013. 12.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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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5월 25일 월요일 아침에 딸이 수학여행을 떠났다.


새벽부터 일어나 학교에 늦는다고 엄마, 아빠를 깨워 밥해달라 난리를 친다.
내가 보기엔 시간이 많이 남았는데, 수학여행이 딸 아이의 맘을 흔들었나 보다.

점심용 김밥을 싸고 남은 김밥으로 대충 아침을 먹고, 아이가 가방을 둘러메고 나가려고 하는데, 아이의 티셔츠가 눈에 들어온다. 


티셔츠와 딸의 얼굴을 번갈아 보며 우리 딸도 많이 컸구나. 스스로 생각할 나이도 되었고, 마음 한쪽이 짠해 온다. 며칠 전 옥션에서 수학여행을 간다고 만원의 두 개짜리 반팔 티셔츠 사더니 그것인 것 같다. 엄마, 아빠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스스로 자신을 표현하는 것이 대견해 보였다.


하지만 모르는척하며 딸에게 물었다.


"선형아! 너 셔츠에 있는 그림이 무슨 뜻인 줄 알어?"

"아니, 몰라! 그냥 요즘 이거 유행이야. 많이 입어."


나의 기대와는 전혀 다른 대답이 돌아오고 말았다. 그리고 실망감.

하지만 어쩔 수 없지 않은가? 더 이상 무슨 말을 한다 말인가?


"너 학교에 그거 입고 가면 선생님이 뭐라고 하실 수도 있겠다. 너 혹시 다른 셔츠도 가져가지?" 
딸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나에게 묻는다.

"가져가는데. 근데 왜??

딸의 셔츠 가운데에는 검은 리본이 그려져 있고, 하단엔 MEMORY란 글씨가 선명히 새겨져 있었다.

  

  딸이 산 옷 광고 사진


아마도 딸 아이는 그게 어떤 의미인 줄 전혀 생각을 못했나 보다. 아니 이런일이 생길거라고는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을 테니까.

설마, 알았어도 딸아이에겐 큰  의미가 없을 수 있다. 그런데 나는 그 옷이 딸아이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든 없던 오늘 아침 그 셔츠를 입고 수학여행을 떠나는 딸아이가 대견하고 자랑스러워 보였다. 그리고 마음 한쪽이 아팠다.

  

노대통령이 유서에 내 주위에 너무 많은 사람이 고통을 당한다고 썼다.
아마도 대통령에겐  많은 사람이 주위에 있고, 많은 사람들이 조사를 받고, 괴롭힘을 당했을 것이다.
특히, 가족마저 고통을 당하는 것을 보는 아버지로서의 대통령 입장은 어떠했을까?
결국, 노대통령은 스스로 생을 마감하면서 주위 사람의 고통을 끊고 싶어했다. 그 맘이 나에게도 절절히 전해온다.


신문과 언론은 노무현 대통령이 서거하자 갑자기 용비어천가를 불러 된다.
노대통령의 인간성과 정의감과 올곧음을 떠들어댄다.

그가 죽었으니 다 용서가 되는 것일까? 아니면 그동안 자신들이 태도를 반성하고 있는 것일까?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고 한다. 난 일부 진보적이라고 생각하는 언론매체에 더 화가 난다. 차라리 적이라고 생각하고 욕하는 조.중.동은 적이니까 그러려니 한다.

하지만 같은편인 것처럼 떠들면서 검찰의 얘기를 그대로 앵무새처럼 떠들어 되면서 노무현 대통령과 지난 정권 사람 모두를 죄인으로 만들던 그들의 모습에 배신감을 느낀다.

 

이제 나에겐 더 이상 분노도 없다.이젠 정말 절망과 자괴감만이 남았다.

어는 대학에 단 한 장 붙어 있는 노대통령 추모 프랭카드가 나를 더욱 절망하게 한다.

그것도 5월의 한복판에 있는 요즘.

 

이제 다만 이게 끝이기를 바랄 뿐이다.

이 어둠이 해 질 녘 노을이 아니라 해 뜨는 여명의 어둠이길 바랄 뿐이다.

 

2009.5.26


노무현대통령은 2009년 5월 23일 서거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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