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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여행

묻지마 여행 - 부산 그리고 여인숙

by 즐거움이 힘 2014. 10.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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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척에서 출발하여 부산을 가기로 했다. 부산을 거쳐 가야 서해안(전라도) 쪽으로 가야겠다는 생각이었다. 삼척에서 부산으로 가는 방법은 동해에서 기차를 타고, 동대구로 간 후 그곳에서 부산으로 가는 KTX를 타는 것이다. 

 

삼척 온천 찜질방에서 하룻밤을 잔 후 아침 일찍 동해로 향했다. 숙소가 찜질방이기는 했지만, 평일이라 사람이 거의 없어 아주 편하게 잠을 잘 수 있었다. 목욕을 워낙 좋아해서 아침 일찍 목욕하니 기분이 어느 때보다 좋았다. 동해에서 동대구까지 거의 5시간이 소요되고, 동대구에서 부산까지 1시간 정도의 시간이 소요된다. 너무 많은 시간을 기차에서 보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예상하지 않았던 KTX를 타는 바람에 비용이 두 배로 들었다.

 

 

 

오랜 시간을 거쳐 부산역에서 도착하니 오랜만에 보는 부산역이 낯설다. 거의 10여년 만에 온 듯하다. 부산역에 내려서니 제일 먼저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며 단식을 하는 사람들의 천막이 눈에 들어왔다. 미안한 마음을 뒤로 하고 내가 부산에 온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인 자갈치 시장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꼼장어 구이에 소주 한 잔 그리고 시장 구경 하는 것이 나의 부산에 온 가장 큰 이유였다.

 

자갈치시장역에 도착하여 자갈치 시장을 따라 충무동 전통시장까지 반복하며, 시장 구석구석을 구경했다. 이것 저것 재미있는 것이 많았지만, 오랜 시간 기차 여행을 했더니 몸이 무거웠다. 등에 짊어진 배낭도 생각보다 무거웠다. 짐을 맡기고, 구경하겠다는 마음으로 숙소를 먼저 정하기로 마음 먹었다. 이제는 정말로 나이가 들었다는 생각이든다. 장기간 여행을 다니다 보면 가장 큰 문제 중의 하나가 숙소다. 그 이유는 비용 중 가장 큰 비중이 들어가는 것이 숙소이기 때문이다. 외국 여행을 하는 경우에는 나는 거의 제일 싼 숙소를 선택했다. 이유는 숙박 비용을 아껴야 다른 것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여행을 준비하면서 국내 여러 숙소를 검색해보니 한국의 게스트 하우스의 경우 하루  20,000원~28,000원 정도의 가격이었다. 6~8명의 사람이 한 방 자는 도미토리 구조였다. 그리고 간단한 토스트 아침 식사를 제공한다고 했다. 

 

국내 모텔이나 여관이 평일 2인 기준으로 4만원 정도의 가격이면 잘 수 있는 것을 고려할 때 우리나라 게스트 하우스의 가격은 너무 비싸다는 생각이 들었다. 1인 여행객이 아닌 이상 게스트하우스를 이용하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결론이다.


 

 

어쨌든 이런 생각이 들면서 나는 갑자기 여인숙 생각이 났다. 문학 작품에 낭만적인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대학 시절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술을 먹고, 친구들과 뒹굴며 자던 여인숙과 입구가 비슷한 여인숙이 부산 자갈치 시장 주위에 여러 곳이 눈에 띄었다.

 

몇 번의 망설임 끝에 한 여인숙의 문을 밀고 들어가 가격과 방이 있는지 물었다.  60살이 조금 넘어 보이는 여주인은 약간은 의아하게 나를 쳐다보며 잘 수 있다 하였고, 금액은 1만2천원이라고 얘기했다. 나는 아주 싼 금액에 놀랐다. 보통 찜질방에서 하루 자도 저만큼의 금액은 지급해야 하기 때문이다. 방을 봐도 되겠냐는 나의 말에 여주인은 3층 제일 구석방을 나에게 보여 주었고, 나는 그 방을 사용하기로 했다. 3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무척이나 가팔라서 넘어지면 어딘가는 반드시 한 곳이 부러질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여인숙 방은 한 사람 아니 두 사람이 겨우 잠을 잘 수 있는 크기의 공간이었다. 서울의 고시원 방 정도의 크기였다. 화장실과 샤워실은 공동 화장실과 샤워실을 사용해야 한다. 옆 방과는 옆 방에서 만일 사랑을 한다면 체온까지 전달 될 수 있을 정도의 얇은 벽으로 구분되어 있었다. 방에는 이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브라운관 TV가 한 대 있었고, 벽 선풍기가 달려 있었다. 다행히 창문도 있었다. 사장님께 이 방을 사용하겠노라고 하고 나는 이 방에서 이틀을 머물렀다. 처음에는 하루만 머물려고 했지만, 여행 중 이렇게 가격대비 좋은 숙소는 없을 것 같아 다음 날 하루를 더 연장을 했다

 

 

배낭을 맡기고, 자갈치 시장을 둘러 보고, 어떤 삐끼 아주머니에 속아 생선 백반에 소주 한 잔하고 다시 돌아오니 주인 아주머니는 안 계시고, 비슷한 또래의 아주머니가 앉아 있었다. 주인아주머니는 관광을 가시고 본인이 하루 이곳을 봐준다고 한다. 간단히 인사하고, 떨어지면 어딘가 부러질 것 같은 계단을 지나 내 방으로 들어갔다. 낮에는 켜보지 못한 브라운관 TV를 켜보니 전체가 약간 노란 색으로 나타나는 드라마가 나오고 있었다. 스포츠를 봐도 예능을 봐도 노랗게 나온다. 저렇게 오래된 TV가 노랗게라도 영상을 뿌려주는 것만이라도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TV를 보면서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낯설고, 어색하지만 그래도 찜질방보다는 훨씬 잠을 푹 잤다. 그리고 밤새 아무 일도 없었다. 아침 일찍 해운대에서 열리는 부산국제 영화제를 구경하기 위해 해운대로 향했다. 특별한 영화를 보기보다는 이왕 온 김에 시기가 맞으니 들러봐야 할 것 같았다. 여인숙을 떠나기 전 하루 더 묵겠다고 말씀을 드리고, 침구를 바꾸어 달라고 했더니 처음에는 여분의 침구가 없어서 안 된다고 한다. 약간의 실랑이를 했더니 침구는 줄 테니 직접 바꾸라고 하였다. 본인은 다리가 아파 계단을 오를 수 없단다, 그리하여 어쩔 수 없이 내가 손수 침구를 들고 3층을 한 번 더 오르내리니 다리가 후들거렸다. 아마도 아주머니도 이 계단에서 구르면 반드시 어딘가 부러질 것을 알기에 나에게 맡긴 것 같았다.

 

 

해운대 구경과 감천 마을 여행을 마친 후 잠시 쉬기 위해 숙소에 돌아왔다. 여행 중에 숙소가 근거리에 있는 것은 정말로 좋다. 잠시 잠을 잔 후 어렵게 어렵게 자갈치 시장의 꼼장어와 소주를 먹고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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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어제는 느끼지 못한 이상한 기운이 여인숙 주위에서 느껴졌다. 여인숙 골목에는 항상 아주머니들이 밖에 나와 수다를 떨고 있었으며, 그들은 내가 골목에서 들어설 때마다 벌떡 일어서는 듯하다가 앉는 듯했다.

 

 

 

나는 그 의미를 몰랐었다. 그리고 숙소에 들어간 후에야 그 이유를 깨달았다. 내가 숙소에 들어서자 카운터의 아주머니는 내게 혹시 여자가 필요하냐고 물었던 것이다. 건성으로 "아니요"를 외치고 난 후, 나는 그때야  조금 전 아주머니들이 일어선 이유와 이곳 여인숙들의 주된 역할을 알 수 있었다. 얼큰한 상태에서 대충 양치와 세면을 한 후 좁디좁은 여인숙에 누워 여러 가지 생각을 해보았다. 

 

예전부터 여인숙은 두 가지 역할들이 많았다. 돈 없는 노동자들이 외지에 나와 싼값에 잠을 자거나, 외지에서 온 외로운 노동자들이나 선원들에게 성적인 욕구를 해결해주는 일이었다. 아마도 내가 묵고 있던 그 여인숙도 그런 역할을 하던 곳이었던 것 같다.

 

 

 
여인숙에 이틀을 묵으면서 여행 중 숙소에 관한많은 생각을 했었다. 국내의 많은 젊은 여행객이 여행 중 비용을 아끼기 위해서 찜질방에서 잠을 잔다. 어떤 사람들은 게스트하우스를 선택한다. 그러나 찜질방의 경우 한 번 들어가면 나올 수 없다는 것과 여러사람이 함께 시끄럽게 자야한다. 그리고 게스트하우스의 경우는 앞에 언급했듯이 너무 비싸다. 그래서 여인숙들을 여행객들을 위한 숙소로 개발을 한다면 어쩔까 하는 생각을 여행내내 했다. 

그런데 지금의 모습, 옛날 모습대로 영업한다면 관광객을 끌어모으는 영업 행위는 거의 불가능하다고 보여진다.

 

 

이틀을 지내는 동안 다른 방 손님을 딱 2명 봤다. 모두 나이 든 부두 노동자처럼 보였고, 여인숙에 장기 투숙하는 듯했다. 그리고 그 외에 아무도 보지 못했다. 문 앞에 다른 사람의 신발조차도. 

 

 

 

내 개인적인 추측엔 다른 잔여 방은 다른 용도로 쓰이는 듯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직업 여성들이 이 여인숙을 드나드는 것 또한 나는 보지 못했다. 

 

다음 날 여인숙을 나오면서 나는 마치 소설가 이상의 소설 날개에 나오는 주인공이 되었다고 탈출하는 느낌이 들었다.

 

사족

본인의 방문한 여인숙 골목의 모든 여인숙의 앞에는 커다란 화분들이 서너 개씩 있었다. 이유가 궁금했다. 그래서 한 여인숙 주인에게 물었었다. 그랬더니 차가운 눈빛만 나에게 전해주고, 아무 말 없이 가버렸다. 혹시 그 화분의 의미를 아시는 분 있으면 댓글 부탁한다. 단순한 개업 화분이나 우연은 아닌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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