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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여행

묻지마 여행 -부산 여행 그리고 꼼장어

by 즐거움이 힘 2014. 10.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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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번 여행에서 부산을 찾은 가장 큰 이유는 꼼장어 때문이다. 대학 졸업 후 누님이 부산에 살 던 시절 가끔 내려와 자갈치 시장에서 먹었던 꼼장어의 기억을 나는 평생 잊을 수가 없었다. 그 당시부터 지금까지도 가끔 동네 포장마차에서 꼼장어를 먹기도 했었지만 자갈치 시장의 산 꼼장어의 맛과 포장마차의 꼼장어의 맛은 감히 비교할 수 없었다. 그래서 부산을 가면 반드시 꼼장어를 먹어야지 하는 생각을 하기는 했지만 거의 20 여 년이 지나는 동안 꼼장어를 좋아하는 사람과 부산을 방문한 적이 없어서 항상 볼 일만 보고 그냥 돌아오곤 했었다.



자갈치 시장 여인숙에 거처를 정하기 전부터, 나는 자갈치 시장을 구경하면서 얼룩말 주위를 어슬렁거리는 숫사자처럼 꼼장어 가게를 중심으로 어슬렁거렸다. 당장이라도 들어가 먹고 싶었지만 꼼장어를 먹으려면 소주가 한 잔 있어야 하기에 해가 지기를 기다렸다. 사자는 해진 후 사냥을 하지 않는다지만 나는 해가 진 후 꼼장어 집이 모여 있는 시장을 배회 하면서 꼼장어 집을 물색하기 시작했다. 여러 집의 호객 행위도 있었지만 나름 맛 있을 것 같은 집을 찾기 위해 이집 저집을 배회했다. 



그런데 생각지 못했던 문제가 있다는 것을 잠시 후 알았다. 산 꼼장어를 혼자 먹으려 했더니 1인분 씩은 팔지 않는다는 것이다. 몰론 먹다보면 1인분 이상을 먹을 수 있겠지만 처음부터 1인분은 팔지 않는다는 것이다. 모든 가게들이 꼼장어 1인분 15,000원 동일한 가격인 듯했고, 그러니 먹으려면 3만원어치 2인분을 시켜야 된다는 것이다.


사실 1인분에 3만원이라면 그냥 1인분을 시키겠지만, 처음부터 2인분을 시키는 것은 괜한 호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것은 느낌이 아주 달랐다. 그래서 기분이 나빴다. 그렇게 몇 집을 물어보니 모든 식당에서 1인분 판매는 안 한다고 한다.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1인분을 팔기에는 산꼼장어를 손질하기에는 손이 너무 많이 간다는 것이 상인들의 입장이었다. 



하지만 나도 내 입장이 있지 않은가? 그렇게 나의 꼼장어를 먹겠다는 마음은 1인분씩 안 판다는 상인들의 말에 상상 조각 나고 말았다. 마치 얼룩말 새끼를 사냥하기 위해서 얼룩말 뒷 꽁무니로  달려들던 사자가 어린 얼룩말의 뒷발에 채여 꼬꾸라지는 모습이 되고 말았다. 


좌절한 마음으로 1인분 7천원이라는 생선구이 백반집에 들어가, 1만원 짜리 모듬 생선구이 정식과 소주를 한 병 시켰지만 머리 속에 꼼장어는 지워지지 않았고, 결국 소주 반 병을 남겨 둔 채 기분 나쁜 배부름으로 그 집을 나섰다. 그리고 무거운 발걸음으로 연탄불에 구워지는 꼼장어 냄새를 맡으면서 내 거처가 있는, 하지만 정체를 알 수 없는 어두운 자길치의 여인숙 골목으로 향했다.



다음 날 해운대에서 있었던 국제영화제 구경과 감천 마을 여행을 한 후 여인숙에 들어와 쉬면서 저녁 먹을 생각과 내일 부산을 떠날 생각을 하니, 내 머리 속에 꼼장어가 다시 떠 올랐다. 어제 사냥은 비록 실패했지만 굶지 않기 위해 또 다시 사냥해야 하는 사자가 되어, 꼼장어를 먹기 위해 이곳에 왔으니, 꼼장어를 반드시 먹어야 하는 것처럼 시장의 꼼장어 거리로 다시 나섰다.



여인숙에서 자며서 아낀 돈으로 꼼장어 2인분을 호기롭게 시켜 먹겠노라 생각하고 매서운 눈으로 자갈치 시장으로 향했다. 어제의 처진 어깨를 펴고 오늘은 좀 더 호기롭게 꼼장어 거리에서 적당한 집을 찾아 나섰다. 


사자의 눈으로 거리를 헤매며, 어느 꼼장어 집의 메뉴판을 보니 꼼장어 2만원(소)라는 글귀가 내눈에 들어왔다. 마음을 비우니 보인 것인가? 작은 얼룩말의 엉덩이를 잡음과 동시에 목덜미를 순식간에 물어 채듯 나도 아무런 망설임 없이 그 가게의 문 없는 문턱을 넘어 꼼장어 작은 것과 소주 한 병을 시켰다. 



이제 만찬을 할 시간이다. 여유롭게 즐기면 된다. 꼼장어가 나오기 전 밑 반찬으로 자갈치 시장의 또 하나의 명물인 선지국과 돼지 껍데기가 기본 반찬으로 나왔다. 선지국 한 숟가락 그리고 보들 보들한 볶은 돼지 껍데기 한 점 그리고 소주 한 잔은 그 동안 여행 피로를 내몸 밖으로 내쫒아 버렸다. 하지만 아직 아니다.



곧 야채와 양념이 적당히 버물려져 있는  꼼장어가 프라이팬에 볶아져 나왔다. 얼마나 기다렸던 순간이었던가?  이제 먹어도 된다는 주인 아주머니의 한 마디에, 먹이를 사냥하고 쓰러뜨린 후 포효하는 숫사자의 모습처럼 목을 처들어 소주 한 잔을 삼킨 후 꼼장어 한 점을 먹었다. 캬~~!



비록 술꾼은 아니지만 술꾼에게 안주는 술보다 더 중요한 요소이다. 그리고 안주는 음식으로서가 아니라 추억으로 먹는 것임을 또 다시 깨달았다. 그리고 정말로 꼼장어가 맛있었다. 게 눈 감추듯 꼼장어를 먹고 나서 밥을 한 공기 달라했더니 아주머니가 아주 맛있게 그곳에 밥을 볶아 주었다. 이 볶음밥도 아마 내가 아직까지 먹어 본 어떤 볶음밥보다 맛있었다.



소주 한 병을 다 비우고 나니, 볶음밥이 있던 프라이팬에는 밥풀 몇 개와 야채 몇 조각만이 나 자빠져 있었다. 


이렇게 난 부산에서 꼼장어를 먹었다. 이것으로 나의 부산 여행은 성공한 것이다. 

이번 부산 여행에서 나를 흥분 시키고, 나를 만족 시킨 것은 해운대에서 본 엄정화, 문소리도 아니고, 감천마을도 아니다. 바로 자갈치 시장의 꼼장어, 선지국, 돼지껍데기 그리고 소주 한 병이었다. 아마도 몇 년 후, 이번 자갈치 시장 여행은 또 다른 추억이 되어 나를 부산으로 또 데려올 것이 틀림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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