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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여행

[그냥 떠난 여행 번외 편] 6일 차에 생긴(베트남 사파 여행 중) 싸움의 기술

by 즐거움이 힘 2015. 1.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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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글은 2014년 12월 27일부터 1월 31일까지 약 34일 간 베트남, 라오스, 태국, 말레이시아를 무작정 다녔던 우리 부부의 배낭 여행기입니다.

외국 여행을 하다 보면 가끔은 놀러 온 외국인들이나 장사하는 현지인들과 충돌하는 일이 생긴다. 물건 값 바가지 때문에도 그렇고, 아무런 이유도 모른채 무작정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하고, 가끔 새치기 하는 얌체같은 사람 때문에도 생기고, 숙소에서 시끄럽게 떠드는 사람 때문에도 그런 일들이 생긴다. 하지만 대부분 충돌하지 않고 그냥 넘어간다.



나의 경우 그냥 넘어가는 가장 큰 이유는 언어 때문이다. 내가 억울하다는 것을, 내가 맞고, 너가 잘못 되었다는 것을 이치에 맞게 설명하지 못하니 당연히 그냥 넘어간다. 한국 말로도 내 감정과 이치를 조근 조근 설명하기 어려운데, 잘하지 못하는 영어로 내 감정과 내용을 표현하려니 얼마나 힘들겠는가?


그러니 나중에는 상대에게 화가 나는게 아니라 말 못하는 내가 답답해서, 나 때문에 내가 죽을 지경이 된다. 그러니 비굴하지만, 비굴하지 않고 대범한 척 넘어가려고한다. 물론 그러는 동안 내 속은 썩어 간다.


어제는 베트남 북쪽 중국과의 경계 지역인 사파라는 산악 마을을 3일 동안 트래킹과 홈스테이를 마치고, 하노이로 돌아오기 위해 7시간 정도 걸리는 야간 슬림핑 버스를 탔다. 피곤한 몸을 눕히고자 밤 10시 경 출발을 위해 버스에 오르니, 이미 좋은 자리는 다른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있어 어쩔 수 없이 맨 뒷자리의 바로 앞자리 1층과 2층을 집 사람과 사용하기로 했다.



그런데 맨 뒷자리 즉, 나의 2층 뒷자리에 술을 약간 먹은 듯한 서양 청년이 자리를 잡았다. 아마 오랜 시간을 가려니 술 기운을 빌어 장시간 가려는 모양이었다. 뭐 그 정도야 모두들 애교로 봐 줄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이 서양 청년 자리에 오자 마자 나의 머리 맡에 자신의 등산화를 거칠게 던져 놓으면서 누워서, 뭐라고 중얼거린다. 내용인 즉, 자기 신발에서 심한 냄새가 날 수 있으니 나에게 참고, 가라는 것이다. 그리고 자기는 미리 얘기를 했으니 책임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친구가 신발을 놓은 자리는 자신의 발 놓는 자리가 아니라 내 의자를 젖혀 내 머리가 놓여 지는 부분이었다.


나는 이 젊은 서양인이 술을 먹어서 착각을 했나보다하여 내가 아는 정중한 표현 please를 붙여가며, 짧은 영어로 여기는 내자리니까 너 자리에 두어라라고 했다. 그랬더니 자기는 어쩔 수 없다는 말만 되풀이 하는 것이다. 내 말은 들으려고도 하지 않고 누워서 꿈쩍도 하지 않는다. 그러고는 계속 자기는 책임없다는 말만 반복하는 것이다. 몇 번을 말을 했지만 전혀 들으려 하지도 않는 것이다.

미동도 하지 않고, 중얼되는 서양 청년의 모습에 동방예의지국 나라의 50대에 갓 들어선 나는 화가 나기 시작 했고, 설상가상으로 이 상황을 헤쳐 나갈 영어 표현이 생각나지 않는 나에게도 화가 나면서, 드디어 둘리의 괴롭힘을 참고 참던 고길동이 폭발하듯 나도 폭발하고 말았다. 각자 자신의 잠자리를 준비하느라 어수선한 버스 안에 나의 한국 말이 쩌렁쩌렁 울리기 시작했다.

"이 열여덜 새키 뭐라는 거야?"
"야!! 열여덜 새끼야! 너 자리에 놓으라고, C8새야!! 여기는 너 자리가 아니라고!
"좋은 말로 했더니 말을 안 들어 쳐 먹네!"


어느 새 나의 입에서는 한국의 쌍욕이 나오기 시작했고, 더불어 나의 목소리는 한 옥타브 높아져 있었으며, 올라간 목소리 톤만큼 얼굴의 온도도 올라가고 있었다. 그리고 나의 손은 서양 청년의 등산화와 그의 머리 맡을 오고 가기 시작했다.

나의 갑작스런 변화에 서양 청년은 고길동의 갑작스런 변덕에 깜짝 놀라 잠시 동안 순한 양이 되는 둘리처럼 슬그머니 자신의 등산화를 자신의 머리 맡으로 넘겼다. 그리고 이미 상대의 말은 듣지 않게다는 마음을 먹는 나에게 뭐라고 조용히 얘기하며 잠자는 시늉을 했다.

"10새끼 진작 말 듣지~~"

그 청년이 전혀 알아듣지 못할 이 한마디를 남기고, 나도 나의 2층 자리에 올랐다. 7시간 버스를 타고 오는 동안 혹시나 뒤에서 그 녀셕이 내 목을 조르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마음이 편히 잘 수는 없었지만,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역시 서로의 의사 소통의 핵심은 말이 아니라 표정과 손짓이라는 것을, 그리고 바로 이것이 싸움의 기술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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