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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

빨간장갑의 요즘 일상다반사

by 즐거움이 힘 2015. 10.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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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이었던가? 아니면 4년 전이었던가? 


집사람과 딸이 3년 동안 싱가포르 생활을 해야 하는 상황을 이용하여, 농업을 전문적으로 배우기 위해 3년간 기숙사 생활을 해야하는 국립 농업대학교 입학을 준비했었다. 결과는 애석하게, 그러나 예상했던 대로 낙방!

서류 심사는 무사히 통과했으나 문제는 면접이었다.

대학의 목표는 농업인들의 자녀를 농업 후계자로 키운다는 것이었다. 그러기에 입학을 위해서는 농업을 영위하는 부모가 있어야 하고, 현재 경영하는 농지나 가축이 있어야 좋은 평가 점수를 받을 수 있었다.


면접 심사 날.
내 아들 나이쯤 되는 아이들(당시 내 아들도 대학 입시를 준비하고 있었다.)과 함께 면접 대기실로 마련된 학교 강의실에 앉아 자기소개서를 쓰고, 면접에 들어갔다. 학교의 교육 목표에 따라 면접은 부모와 학생이 함께 들어가는 것이 원칙이었다. 이유는 학생의 의지와 능력도 중요하지만, 부모의 의지와 조건도 상당히 중요한 요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농사를 짓고 있는 부모도, 농사를 지은 경험도, 농사를 지을 땅도 준비하지 못한 나는 나 홀로 3명의 면접관을 마주해야만 했다.
"학생은요? "
"제가 수험생입니다."
"......"
다른 수험생들의 부모뻘로 보이는 수험생답지 않은 수험생이 자리에 앉으니 면접관들도 당연히 당황했을 듯싶다.

"나이가 너무 많으신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드네요?"
"대학에서 수학을 전공하셨고, IT 관련 된 일을 하셨나 보네요?"
"아들뻘 되는 젊은 친구들과 같이 먹고 자고 할 수 있으시겠어요?" 

부정적인 태도 속에서 이어지는 면접관의 질문 아닌 질문에 "100세 시대에 40이 갓(40대 중반에 이 표현이 어울릴지는 모르겠다.) 넘은 나이는 많은 나이가 아니고, 농업 기술을 배워서 그동안 내가 배웠던 IT 기술을 접목해보고 싶고, 오히려 자식 같은 나이의 아이들이기에 더 잘 어울릴 수 있다"는 나의 말은 그저 허공에 내젖는 주먹질 같을 뿐이었다.

결론은 예상 대로에 낙방!

아쉽기는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현실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3년 동안의 싱가포르 생활.
공부해서 점수를 더 받을 수 있는 것이라면 주경야독으로 공부하면 되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점수는 낮아지는 조건은 농업대학 입학을 시도할 수 없게 만들었다.

최선이 아니면 차선이라고 했다. 그래서 가족과 함께 귀국한 올해 초 우선 내가 사는 지역의 원주 농업기술센터에서 진행한 신규농업인교육(구, 귀농,귀촌교육)을 택했다. 그리고 6개월이 지난, 지난주 100시간의 농업 교육을 수료했다. 



일주일에 한 번, 하루 4시간 하는 공부가 얼마나 도움이 되겠느냐마는 어쨌거나 내가 하고자 했던 일에 한 발을 나는 내디뎠다. 그리고 이번 봄에는 충주의 처가 땅에서 실습 겸 농사를 지었고, 지금은 정선에서 지인들의 도움으로 지인들과 함께 영농조합을 만들어 산양삼과 산나물 등을 키우면서 배우고 있다. 그리고 내년에는 좀 더 깊이 있는 학습을 위해 또 다른 농업 합숙 교육을 계획하고 있다.


2006년, 선택이었는지 아니면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는지 강원도로 이사하면서 줄곧 고민한 것이 언제, 어떻게 농사를 지을 것인가였다. 이제 드디어 그 일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이제 나의 일상다반사는 농촌의 일상다반사가 될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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