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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

닭 때문에 못 살겠다.

by 즐거움이 힘 2016. 6.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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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마다 초록의 잔디가 깔린 마당을 비추는 연한 햇살,

막 일어난 더벅머리 총각의 머리처럼 산발한 개복숭아 나뭇가지와 그 위에서 재잘 되는 새 소리,

노랑색이라 해야할지 주홍색이라 해야할지 모르겠는 저녁 햇살이 비추는 밭두렁,

고된 하루 농사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농부를 맞이하는 개 짖는 소리,

굴뚝에 모락모락 하얗게 피어나는 연기에 맞춰 여물 달라고 우는 소의 모습,

그리고 작은 바람에도 살랑이는 길가의 이름 모르는 수많은 꽃과 나물.

 

24시간 울려 퍼지는 도시의 소음과 바라보는 어디에나 있는 현란한 인공 조명에 지친 우리에게 자연과 더불어 지내는 잠깐은 너무 많이 사용하여 닳아버린 힐링이라는 단어로는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평안함과 안식을 가져다준다그리고 이런 일상을 오래 누릴 수 있기를 바라며 사람들은 귀농을 꿈꾸고, 귀촌을 꿈꾼다.

나도 그랬다.

 

본 사진은 특정 닭과 관련 없음을 밝힙니다. 본 사진은 자료 사진입니다.


숨 쉴 때마다 내 몸의 나쁜 기운을 정화시켜 줄 수 있을 것 같은 맑은 공기와 마시면 몸의 노폐물을 순식간에 다 씻어 줄 수 있을 것 같은 맑은 물이 있고, 오로지 초록 한 색으로 둘러 쌓여 있는 정선 가리왕산 밑에 20평의 앞 마당을 가진 붉은 벽돌 원룸형 농가를 모두와 같은 마음으로 하나 장만했다계약까지는 이런저런 고민이 있었지만 주위 이웃들도 좋은 것 같고, 행정 업무를 할 수 있는 읍사무소나 내가 농사를 짓는 곳과도 멀지 않고, 조용한 동네라 결국 이 집을 융자를 얻어 샀다.

 

20 가구가 채 되지 않는 마을에는 서로의 사생활을 보호할 수 있는 만큼의 거리를 두고 집들이 산재해 있다. 특히 내 집 주위에는 나를 포함하여 4가구가 지근 거리에 있다. 넓은 콘크리트 주차장과 현대식 양옥 건물로 되어 있으며, 부부가 사는 집이 앞집이고, 가리왕산에서 불어 오는 겨울 바람을 막기 위해 샌드위치 판네로 집을 온통 감싼 집에서 홀로 사시는 할머니가 있는 집이 옆집이며, 서울서 귀향하여 할아버지 혼자 사시는 집이 뒷집이 있다.

 

우리가 꿈꾸듯이 시골 대부분의 집은 닭을 기른다. 내 주위의 이웃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버려진 가구의 일부분이었을 나무 쪼가리로 지붕을 만들고, 가운데가 까맣게 탄 바베큐용 석쇠로 만든 닭장들이 공통적으로 있다. 닭을 키우기 시작한 이유들은 각 가구마다 다르겠지만 추측으로는 쉽게 장을 볼 수 없는 시골에서 달걀을 얻기 위함이 제일 처음일 것이고, 두 번 째는 음식 재료로서 기르는 닭일 것이고, 마지막 세 번째는 시골 사는 적적함을 덜어주는 반려 동물이나 음식 찌꺼기를 처치해 주는 역할로 닭은 길러지는 것이리라.

 

요즘 나는 세 집 중 앞집에서 기르는 수탉 때문에 못 살겠다


문제의 수닭에 대한 얘기를 하기 전에 닭에 대한 기본 상식을 몇 가지 얘기하고 내 얘기를 하기로 하겠다.

 

닭은 수컷이 운다. 우리가 흔히 꼬끼오라고 표현하는 닭 소리는 모두 수컷의 울음소리다. 때에 따라 암컷들도 울기는 하지만 그 소리는 무척이나 작고, 먹이를 먹거나,알을 낳거나, 싸우는 등 의사 표현을 하는 수단으로 소리를 낸다. 반면에 수탉은 동트기 전, 날이 밝아진다는 것을 알리는 것을 자신의 운명으로 생각하며 운다. 수탉의 소리는 암탉의 울음을 대화의 소리본다면 수탉의 울음은 포효에 가깝다. 이런 수탉의 울음 소리를 듣고 인류는 아주 오래전부터 하루 일과를 시작했다.

 

그리고 중요한 사실 중 하나는 닭은 암컷만 있어도 알을 낳을 수 있다. 수컷과 교미없이 난 알은 무정란이며, 병아리가 될 수 없다. 수컷과 교미하여 낳게 되는 유정란은 여러 가지 조건이 맞으면 병아리로 부화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유정란이 무정란보다 비싸며, 영양가는 비슷하다고 하는데 사람들은 유정란을 더 좋아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암탉과 수탉을 함께 기르려한다. 아마도 앞집도 이런한 이유로 수탉을 기르고 있는 것 같다.

 

 

나의 고민은 앞집의 암탉이 아닌 수탉으로부터 출발한다. 새벽을 알리는 것이 자신의 숙명이라고 생각하는 앞집 수탉은 새벽에는 당연하고, 아침에도 울고, 점심에도 울고, 저녁에도 울고, 시도 때도 없이 운다. 차라리 시계 속 뻐꾸기라면 정해진 시간에 울기라도 할텐데, 이 수탉은 정해진 시간 없이 울어댄다. 수탉은 팝페라 가수 키메라처럼 고음으로 운다, 닭 우는 소리를 아무런 마음에 준비 없이 시도 때도 없이 들으니 이게 여간 스트레스가 아니다. 소리가 고음이다 보니 나에게는 아주 날카롭게 들린다.

 

이사한 지 며칠째 되던 날

내 집 담벼락에 접해있는 자신의 밭에서 풀을 뽑던 앞집 아저씨가 나에게 말했다.

 

"저희 닭이 좀 시끄럽지요. 닭이 저렇게 우는 것은 자기 위치를 알려 주려고 그러는 건데, 얼마 전에 같이 부화한 형제 닭을 다른 곳에 보냈더니 좀 우네요. 저희 닭이 건강한 수탉이라서 그런 겁니다. 하하하"


", 네 좀 시끄럽기는 한데 참을만 합니다."

 

이사 온 지 며칠 만에 '닭 때문에 못 살겠어요' 라고 말하기에는 염치가 없어 그렇게 말했었다. 그때만 해도 수탉 울음 소리가 나에게 엄청난 스트레스로 다가올지는 생각하지 못했었다.

 

 

이사 온 지 며 칠은 그냥저냥 지나갔는데, 이곳에 산지 한 달여가 넘어가자 닭소리가 점점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다. 집들이겸 다니러온 가족들은 전혀 듣지 못하는데, 작은 소리로 울어도 수탉의 소리가 나에게는 들렸다. 개가 자기 주인의 발소리와 다른 사람의 발소리를 구분하듯이 나는 다른 수탉과 앞집 수탉의 울음소리를 구분하는 경지에 이르렀다. 닭 때문에 조현병이 걸릴것만 같았다급기야 새벽에 들릴 닭 소리의 공포에 매일 밤 잠자리에 들기가 두려웠고, 잠자리에 들 때마다 수탉을 없애는 여러 가지 쓸데 없는 상상을 하게 되었다.

 

몰래 가서 저 닭의 모가지를 비틀까? 아니면 농약 묻은 음식을 줄까? 라는 끔찍한 상상을 해봤지만 이것은 완벽한 대안이 될 수 없었다. 죽은 이유를 모르는 앞집 주인이 새로운 수닭을 사오면 끝이기 때문이다. 구관이 명관이라고 목청이 더 큰 수탉이 오면 그건 더 문제가 될 것이었다.

 

앞집 사람에게 중중히 부탁을 해볼까?'닭 때문에 시끄러워서 못 살겠다'.

아마 별난 도시 사람이 이사왔다고 동네에서 나를 왕따시킬지 모른다. 열 받은 앞집, 옆집, 뒷집에서 수탉을 몇 마리씩 더 사서, 새벽이면 닭 소리가 영화관의 서라운드 시스템의 음향으로 울릴지도 모른다. 그러다가 결국 앞집을 걸쳐 들어와야 하는 집 진입로가 막혀버릴지도 모른다.

 

군청이나 읍사무소에 민원을 넣어볼까? 시골에서 닭 기르는 것을 문제 삼을 거면 차라리 도시로 돌아가라고, 현지인 대부분이 친척간인 시골 담당 공무원은 나에 충고할 것이다. 그리고 만일 민원 넣은 사실이 지역에 알려지기라도 하면 '저 넘이 닭 못 기르게 한 그 넘이래'라고 마을의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경로당에서 그리고 밭일을 하면서 나를 화제 삼을지 모른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마치 석가모니가 인간의 생노병사를 고민하다가 해탈의 경지로 다달은 것처럼 깨달았다. 수탉을 내가 이기는 방법은 없고, 내가 이곳에 살고자 한다면 자연에 순응하며 수탉과 공존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그 방법은 불행하게도 내가 닭 울음 소리에 적응하는 것이다. 아마도 이게 내가 닭보다 나은 것을 증명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이것은 내가 결코 수탉에게 굴복하는 것이 아니라, 나는 자연과 융화하고, 자연과 더불어 살게 되는 것이다. 나는 이렇게 깨달았다.

 

어제와 오늘 나는 동이 트기 훨씬 전 눈을 떴다. 그리고 침대에 누운 채로 닭의 울음 소리를 기다렸다. 닭이 울자 '너 때문에 일어난 것이 아니고, 나는 벌써 일어났어'라고 닭에게 시위하듯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하루를 시작했다. 요즘 나는 10시에 잠자리에 든다. 다행히 앞집 수탉은 양심이 있는지 해가 진 후에는 울지 않는다. 물론 양심이 아니라 원래 닭의 습성이겠지만 말이다. 


닭이 잘 때 나도 자야 한다. 나는 자연에 순응하고, 닭과 공존을 택한 것이다. 인간도 자연의 일부분이기 때문이다. 다시 한 번 짚고 넘어가지만 나는 결코 수탉에 굴복한 것이 아니다. 나는 꿈에 그리던 자연인이 된 것이다.

 

나는 닭 때문에 아침형 인간이 되었다. 덕분에 새벽 일찍 일어나 마당 잔디 밭에 있는 풀도 뽑고, 새벽에 아침 식사를 하고, 이렇게 아침 일찍 글을 쓰는 여유 아닌 여유도 가지게 되었다.

 

지금도 앞집 수탉은 떠나 버린 형제 닭에게 자기 위치를 알려 주려는지 블랙새바스의 she's gone의 도입부를 부르고 있다


인간의 소리가 아닌 닭은 소리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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