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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일기

세여자(한겨레출판)-조선희

by 즐거움이 힘 2020. 1.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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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을 넘은 이후에는 가능하면 밝은 분위기의 문학 작품을 읽는 것을 선호한다. 나이가 들어서인지 내용이 무거운 책을 보게 되면 그때의 감정을 감당하기 어렵다. 그것은 감정을 넘어 몸마저 힘들게 한다. 특히 한국 근현대사가 배경이 되는 책은 이러한 이유로 잘 읽지 않게 된다. 익히 알고 있는 상황들, 그리고 뻔할 수밖에 없는 사건의 전개 그리고 거의 예측대로 들어맞는 결론들이 나를 힘들게 하기 때문이다. 한강이나 태백산맥을 읽을 때는 미리 마음의 준비와 그것을 견뎌낼 수 있는 체력을 보충하고서야 읽었었다. 그리고 그때는 젊었었다. 


세여자는 집사람이 조선희 작가의 인문학 강좌를 들은 후에 사가지고 온 책이다. 집사람은 이 책을 읽은 후 근대 한국 여성들에 삶에 관한 책을 연이어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에게도 이 책을 읽어보라 권했다. 하지만 배경이 일제강점기로부터 시작하는 것이라 쉽게 읽기를 시도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몇 장을 흩어보니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겠지만 얼마 전 배운 여성교육론에 등장하는 여성 단체들이 나오고 시대적 상황이 눈에 그려져 본격적으로 읽어 보기로 했다.


책은 책 표지의 사진 속에 나온 세 여자의 삶을 사실과 허구를 섞어 쓴 소설이다. 저자에 의하면 일부 상황에 대한 허구가 들어가 있기는 하지만 방대한 자료를 통한 고증을 거친 것이기에 기본적인 세 여자의 삶은 사실에 가깝다. 일제 강점기와 한국 전쟁에 대한 상황적 지식이 있다면 아주 재미있고,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이다. 하지만 읽으면서도 재미로만 느낄 수 없는 것은 이 모두가 실화이고 100년 전 우리나라의 모습이고, 당시 젊은이들의 모습이라는 것이다. 세 여자의 삶 중 누구의 삶이 올바른지 평가할 수 없으며, 그래서도 안 된다. 세 여자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각자의 삶을 살았다. 다만 상황과 현실이 그리고 우연이 그들의 삶은 바꿔놓았고, 각자의 뜻대로 삶아가게 놔두지 않았다. 현재 페미니스트 운동에 버금가는 근대의 여성 운동의 모습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이 책은 나에게 큰 울림을 준 책이다. 책은 한국의 근현대사에서의 민족운동과 좌익의 모습을 잘 표현한 책이기도 하다. 혹시 이 분야에 관련하여 관심 있다면 꼭 읽어봤으면 한다. 책을 덮고 난 후 느낌은 한국판 안나카레니나를 읽은 것 같았다. 점수 95점



나의 밑줄


1권

  • 거리에서 여럿이 부르는 만세보다 집 안에서 혼자 부르는 만세가 더 어려운 법이다.-23

  • 바깥이 춥다고 껍질 속으로 도로 들어가겠니? 죽도 밥도 아닌 그런 인생은 생각도 하기 싫어.-183

  • 정말 미안하오. 내가 죄가 많소. 당신의 하느님께 감사하오. 의지가지없을 때 당신에게 위로가 되었다면 그 하느님은 좋은 분임에 틀림없소.-200

  • 벽시계의 초침이 다섯 번쯤 똑딱 쇠를 낸 다음 그가 말했다.-316

  • 농담 한마디가 사람을 죽이는 세상이오.-335

  • 정치란 양의 얼굴을 한 늑대요. 어떤 정치에도 최선은 없소, 진보는 상대적인 것이고 더 나은 쪽을 택한하는 것 뿐이오.-395

  • 그녀는 마음에 안 들면 떠났다. 떠나는 건 쉬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가장 하책이었다.-396


2권

  • 그대들의 해골이 전쟁터에 날릴수록 그대 상관의 가슴에는 훈장이 늘어난다.-84

  • 이제 이곳에 혁명가는 사라지고 정치가들만 득실거리는 것이다.-137

  • 창익과의 우정이 단 한 번 발길질에 벼랑 아래로 곤두박질쳤다.-153

  • 사발만큼 큰 잔에 넘실대는 커피는 불면으로 하룻밤을 날릴 만큼 많은 양이었다 -165

  • 억지로 어찌하려다보면 짐착이 되고 그게 우리 인생의 소중한 시간을 도둑질해가버린다네. 그러니 지나가는 사람은 지나가게 두고 머무는 사람은 머무르게 두게. -166

  • 관대함과 현명함의 미덕은 굶주림과 인권유린이 없는 환경에서 훈련되는 것이다. -175

  • 극심한 생활고가 통통하던 뺨을 할퀴고 지나갔다.-227

  • 돌이켜보면 내가 한 일들 중에 태반은 안 해도 좋은 일 아니었나 시푹나 -277

  • 권력의 낭떠러지라는 건 공평해서 더 높은 데서 떨어질수록 더 심하게 부서지는 법이다. -336

  • 죽는 건 쉽다. 사는 게 어렵지 -359

  • 그들은 한 나라가 다른 나라를 착취하면 안 된다고 믿었다. 그리고 한 계급이 다른 계급을 착취하면 안 된다고 믿었다. -371

  • 한 사람의 인생처럼 역사에도 실수가 있고 착오가 있고 우연이 있고 행운도 있다. 목적과 정반대의 결과가 빚어지고 우영한 실수가 운명을 바꾸기도 한다.-375

  • 한국 사회가 그 같은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을 졸업하려면 한번은 좌우를 확 섞어야 하는 거 아닌가 싶다. -3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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