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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여행

[그냥 떠난 여행 유럽]5. 몽블랑에서 첫날 밤

by 즐거움이 힘 2019. 2.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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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여행의 설렘은 이곳 샤모니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꿈에 그리던 스위스 그리고 몽블랑 앞에 섰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비록 지금 야영을 하는 곳은 프랑스 땅이지만 앞으로 알프스 산맥의 몽블랑을 여행할 것이라는 사실만으로 설레기 충분했다. 첫 야영지에 텐트를 치고, 우리를 데려다 준 동서는 제네바로 돌아가야 하기에 함께 버스를 타고 샤모니 시내로 나왔다. 이곳 샤모니의 야영지나 숙박지는 숙박객에게 머무는 인원, 머무는 시간 동안 사용할 수 있는 무료 버스표를 준다. 아마도 중심지의 교통 혼잡을 예방하고, 자유롭게 관광지를 돌아 다닐 수 있게 하는 제도인 것 같았다. 처음 체크인을 할 때 인원수에 맞게 버스표를 받았고, 시내로 나오는 길에 차는 세워두고 버스로 나왔다.

 

 

시내로 가는 버스와 시내 반대 방향으로 가는 버스가 같은 곳에서 선다. 이날은 동행자가 있어서 제대로 버스를 탔는데, 다음날 우리는 반대로 가는 버스를 타서 의도와 무관하게 샤모니의 작은 마을과 작은 역사를 구경하고 산악 기차를 타는 행운 아닌 행운을 얻었다. 어쨌든 시내에 나와 동서를 배웅할 겸 시내 구경을 하기로 했다. 샤모니 시내는 80년대 설악산 설악동을 연상케 했다. 마치 설악동 같은 마을이 아주 드넓게 펼쳐져 있다고 보면 맞을 듯 싶다. 시내에는 많은 펜션들이 있었고, 펜션만큼 각종 상점들이 있었다. 그리고 거리에는 관광객들로 발디딜 틈이 없었다. 시내 중심에는 몽블랑 정상의 눈이 녹아 흘러 나오는 회색빛 계곡물이 큰소리를 내며 흘러가고 있었다. 마치 장마 때 큰 산의 계곡물을 보는 느낌이다. 다만 우리나라처럼 맑은 계곡물이 아닌 석회가 녹은 희뿌연 색의 물이었다. 먹고 버린 우유 통에 수돗물을 부은 듯한 색깔이었다. 희뿌연 물을 보며 집사람은 물이 맑다고 연실 감탄을 했다. 같은 물을 보고 나는 탁하는 느낌을 느꼈는데, 집사람은 나와는 다르게 집사람은 그 물을 맑게 보고 있었다. 아마도 물의 색상보다는 아무런 부유물이 없는 물을 보고 맑다고 생각한 것 같았다.

 

제네바로 돌아가는 동서에게서 다음날 몽블랑을 올라가기 위한 케이블카 타는 곳을 안내받고 동서는 제네바행 버스에 올랐다. 그리고 우리는 시내 구경을 위해 동네를 걸었다. 그런데 시차 적응이 안 돼서인지 나는 몸이 무척이나 무거웠다. 하지만 집사람과 딸은 아주 씩씩하게 걸으며 도시를 음미하였다. 충분히 시내 구경을 하고 야영지로 돌아갈 예정이었는데 산악 지역답게 갑자기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우산이나 우비를 가지고 오지 않아 길가의 처마 밑에서 비를 피했다. 날씨가 추워 비를 맞으며 산책을 계속할 수는 없었고, 야영지의 텐트가 걱정되기 시작했다. 텐트 위에 덧씌우는 플라이를 치지 않아 텐트에 비가 샐까 걱정이었다. 그리고 잠깐 맞은 비에도 해고 1000미터가 훨씬 넘는 산이라 한기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할 수 없이 우리는 당장 먹을 먹거리를 마트에서 사서 야영장으로 돌아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서둘렀다. 야영장에서 받은 지도와 구글 지도를 이용하니 버스 정류장을 찾기는 어렵지 않았고, 집사람은 시내를 그냥 지나쳐 가야하는 것이 못내 아쉬워했다. 버스를 타고 야영장에 도착하니 언제 그랬냐는 듯이 비가 멈췄다. 산악지대라 날씨가 하루에도 몇 번씩 바뀐다고 한다. 다행히 비가 많이 오지 않고, 야영지에는 시내보다 비가 덜 온듯했다. 텐트 주위가 물기에 젖었을 뿐 텐트는 멀쩡했다. 나름대로 방수가 잘되는 것 같았다. 앞으로 20여 일의 야영 기간 동안 텐트에 비가 샐까하는 걱정은 안 해도 될 것 같았다.

스위스 숙소에서 이곳 알프스로 야영을 떠나기 전 스위스와 알프스 날씨 앱을 소개받았는데 놀라울 정도로 정확했다. 산악 지대임에도 불구하고 강수량이라든지 비 오는 시간이 거의 일치했다. 우리나라 일기 예보와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 야영지에서 첫 저녁은 샤모니 시내에서 사 온 고기를 구워 먹기로 했다. 이곳 마트의 물가는 한국의 2/3 정도 되는 듯했다. 특히 육류는 무척이나 쌌다. 이후 여행에서 한국의 물가에 비해 프랑스, 독일 등의 식용품 물가는 무척이나 싸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고, 덕분에 여행 내내 끼니 때마다 고기를 구워 먹는 호사를 누렸다. 야영지의 첫 밤이 오고, 각자 침낭과 전기 장판을 하나씩 깔고 잠자리에 들었다. 그러나 몽블랑의 밤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자다 중간에 어쩔 수 없이 한국에서 가져온 패딩을 꺼내 입을 수밖에 없었다. 한국의 말복 더위 중일텐데 알프스 산 밑에서 우리는 추위에 떨고 있는 것이었다. 패딩을 입고 침낭을 덮으니 그제서야 추위를 견딜 수가 있었다. 어쨌든 잠시 추위에 떨고 알프스 소녀 하이디가 뛰놀았는지 모를 풀밭의 야영지에서 우리는 조금은 추위에 떨며, 조금은 설렘에 떨며 첫날 밤을 보냈다.

 

 

새벽 일찍 일어나

음식을 하면서 잠시 온풍기를 켰더니 전기가 나가 버렸다. 아마도 우리가 신청한 용량보다 더 많은 용량을 사용하여 차단기가 내려간 것 같았다. 해가 미처 뜨지 않은 새벽이라 관리실에 얘기는 하지 않았지만 처음에 신청한 6A(암페어)보다 더 많은 용량을 순간적으로 사용한 것이다. 아마도 휴대용 온풍기가 전기를 많이 사용하는 것 같았다. 전기가 없으면 음식을 할 수 없기에 해가 뜬 후 관리실에 전기를 다시 켜달라고 얘기를 하고, 용량은 올리지 않았다. 그리고 아침을 해 먹기 시작했다. 유럽 야영을 할 때는 반드시 사용하는 제품의 전기 용량을 정확히 계산해서 사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야영장에 따라 자유롭게 전기를 쓰는 것도 있고, 어떤 곳은 각자 계량기가 붙어 있어 쓴 만큼 비용을 내는 곳도 있다. 하지만 자신의 전기 제품이 얼마큼 용량을 사용하는지는 미리 알아보고 가는 것이 좋다. 참고로 단위는 A(암페어) 단위로 아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는 대략적인 용량을 알아 이날 추가 증설을 하지는 않았다.

 

한국에서 준비해온 컵밥으로 아침을 먹고 몽블랑 케이블카를 타기 위해 서둘렀다. 아침 햇살이 야영장을 환하게 비추는 걸 보니 날씨는 좋을 것 같았다. 일기예보 앱에도 잠깐 구름이 끼고 잠깐 동안만 비가 내릴 것이라 한다. 우리는 몽블랑에 올라간 후 올라간 곳으로 내려오지 않고, 트래킹을 한 후 다른 곳으로 내려올 예정이었다. 정리를 마친 후 서둘러 어제 버스를 탄 곳으로 내려가 시내로 가는 버스를 탔다. 그런데 우리가 탄 버스는 시내로 가는 것이 아니라 반대 방향으로 가는 버스였다. 같은 곳에서 버스를 타기때문에 신중했어야 했는데, 급히 내려오느라 미처 방향을 확인하지 않고 서둘러 타서 실수를 한 것이다. 우리는 할 수 없이 목적지의 반대 방향으로 조금 더 올라가 산악 기차를 타고 내려오기로 했다. 무료 버스표 덕분에 산악 기차도 무료로 이용할 수 있었다. 우리가 내린 곳은 montroc-le-Planet 이라는 작은 역이다. 시내로 오늘 기차를 기다리는 동안 역 주위 구경을 하기로 했다. 비록 몽블랑 올라가는 시간은 조금 늦어졌지만, 이 마을 구경은 한적한 몽블랑을 보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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